­가을을 여는 9월 첫주 영화가이드

입력 2004-09-08 09:27:01

10일 신작 9편 동시 개봉

가을이 오면 나날이 황금색을 더하는 들녘이 풍년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극장가도 풍성해진다.

그래서 가을은 영화팬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계절이다.

올 가을에도 9월의 둘째주인 10일, 9편의 영화가 스크린에 걸린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지쳐 있을 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에 사색을 선물하면 어떨까.

◇ 감동

서세원이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됐던 영화 '도마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10일 전부터 안 의사가 순국한 1910년 3월 26일까지를 보여준다.

감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지만 실제 잘 모르는 안중근 의사의 감춰진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까지 안 의사를 둘러싼 가족 관계, 시대적 배경과 그가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 무게에 중점을 뒀다지만 영화는 생뚱맞게 흐른다.

특히 멋지게 쌍권총을 갈겨대는 B급 홍콩 느와르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 안중근 의사의 숨겨진 모습이었다니.

스포츠만큼 현실에서 일어나는 가장 드라마틱한 것도 드물지 싶다.

잘 만들어진 한편의 스포츠영화는 감동의 도가니다.

1954년의 스위스 베른 월드컵을 소재로 한 독일영화 '베른의 기적'(손케 보르트만 감독)은 지혜롭게도 월드컵이라는 폭발적 에너지의 핵심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가족 간의 이야기 뒤에 병풍처럼 펼쳐 놓음으로써 두 개의 소재가 조화를 빚을 수 있는 극적 구조를 만들었다.

전쟁이 남긴 상처로 갈등을 겪던 가족이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월드컵 중계와 함께 펼쳐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언뜻 궁금증이 생긴다.

2002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태극전사들의 영화는 언제쯤 나올까.

◇ 재미

이번 주 극장가는 칸 영화제의 축소판이다.

올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카란디루'(헥터 바벤코 감독)와 비경쟁부문 초청작 '연인'(장이모우 감독)이 동시 개봉하는 것. 브라질 영화 '카란디루'는 지난 1985년 '거미여인의 키스'로 성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헥터 바벤코 감독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만든 첫 영화. 영화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위치한 남미 최대의 감옥 카란디루에서 지난 1992년 111명의 죄수가 살해된 실제 일어났던 피의 학살사건을 다룬다.

감옥 내 재소자들이 일구어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질서, 죄수들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 등은 그동안 6편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바벤코 감독만의 깊은 시선으로 삶과 폭압을 응시한다.

남성 동성애자의 끈끈한 삶을 주시했던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를 잊지 못하는 영화팬들에게 강추.

장이모우 감독의 신작 '연인'은 금성무, 유덕화, 장쯔이 등 막강 캐스팅만큼이나 감독 특유의 스케일과 탁월한 색감이 압권인 영화. 그의 전작 '영웅'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 무인을 그렸다면, '연인'은 사랑을 위해 대의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할리우드풍을 빌려왔지만 맹인 장쯔이가 추는 춤이나 리안의 '와호장룡'을 무색게하는 대나무 숲 액션신 등은 중국만이 가진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시크릿 윈도우'(데이비드 코엡 감독)는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볼 만한 영화다.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포 패스트 미드나잇-시크릿 윈도우, 시크릿 가든'을 스크린으로 옮긴 만큼 후반부 소름끼치는 반전이 핵심.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외딴 산장에 기거하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자신이 발표한 책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위협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 영화는 조니 뎁의 매력과 재능을 다시 볼 수 있다.

◇ 폭력

이번 주 할리우드는 가을의 정서와 한껏 비켜간다.

영화를 음미하거나 생각할 시간에 대한 배려는 없다.

단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통쾌한 복수나 응징에 대리만족을 즐길 수 있는 시간만 제공한다.

30년 가까이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동명만화가 원작인 '퍼니셔'(조나단 헨스라이 감독)는 가족을 잃은 델타포스 출신의 한 FBI 요원의 복수극을 담고 있다.

악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의 연기에 눈길이 간다.

또 다른 복수극 '워킹 톨'(케빈 브레이 감독)은 인기 프로레슬러 '더 록'(드웨인 존슨)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액션 모험물. 할리우드의 싸구려 상술과 함께 도착한, 평범하고, 지속적으로 예측가능한 영화라는 현지 평론가들의 혹평처럼 영화 자체보다 무거운 목재를 들고 우아하게 서있는 더 록의 포스터 이미지에 더 관심이 간다.

◇ 엽기

인터넷에 엽기라는 말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조합되는 단어는 일본이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엽기코믹의 최고봉을 달렸던 일본영화 '지옥갑자원'(야마구치 유다이 감독)은 한마디로 희한한 영화다.

어떤 장르인지 도통 분간이 어렵다.

일본의 유명한 야구대회인 갑자원을 소재로 했지만 황당무계한 상상력, 논리와 상관 없는 전개, 기괴한 캐릭터 등으로 이뤄진 그야말로 '움직이는 만화책'.

일본영화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자막이 나가는 등 한국어로 대사가 처리된 '호텔 비너스'(다카하타 히테타 감독)도 특이하다.

호텔을 무대로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구사나기 츠요시가 열연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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