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가상르포>-함락된 진주성을 가다

입력 2004-08-30 09:29:02

1593년 7월 2차 진주성 전투가 끝난 후 왜병이 점령한 진주성을 둘러보았다.

전투가 끝나고 열흘이 지났지만 비린내와 썩는 냄새가 성안에 가득했다.

장마비에 흘러내리던 성벽은 10만에 달하는 왜군의 공세에 힘없이 무너졌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왜병들이 소금을 잔뜩 뿌린 나무궤짝을 옮기는 중이었다.

궤짝에는 조선인의 귀와 코가 담겨 있었다.

본국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젊은 일본 무사는 귀와 코를 담은 궤짝을 본국으로 가져가 귀무덤과 코무덤을 만들 것이라며 웃었다.

도전적이고 불타는 눈빛을 가진 하급 무사였다.

그는 소금에 절인 귀와 코 중에는 왜병의 귀와 코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전공을 높일 수 있다면 조선인의 코든 일본인의 코든 상관할 일이 아닌 듯 했다.

죽은 말의 몸뚱이에 파리들이 우글거렸다.

내장이 튀어나온 말은 반쯤 썩었지만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말의 내장에 코를 박고 있던 누런 개가 인기척에 황급히 달아났다.

개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부터 주검이 널려 있었다.

검게 말라붙은 피딱지를 뒤집어 쓴 주검, 포개져 죽은 주검이 즐비했다.

창에 찔려 반듯하게 눕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고꾸라진 늙은이의 주검이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졌을 망자의 얼굴은 웃는 듯 했다.

죽은 어미의 마른 젖을 빨다 죽은 젖먹이의 주검에도 귀는 없었다.

왜병들은 젖먹이의 귀까지 잘랐다.

성 한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체를 태우는 중이었다.

주검을 방치했던 왜병들은 이질이 번지자 시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들것을 든 왜병은 없었다.

왜병들은 마른 주검의 발을 질질 끌었다.

시체가 거칠고 마른 땅에 긁혔지만 굳은 몸뚱이에서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았다.

도망치다 붙잡힌 조선인 포로들이 땅을 파고 시체를 묻었다.

포로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듯 입술은 바싹 타 들어가고 있었다.

시체를 모두 묻고 나면 자신의 몸뚱이를 묻을 구덩이를 파야 할 운명이었다.

포로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마르고 키 작은 왜병이 칼집으로 포로들을 후려쳤다.

맞은 포로는 고꾸라졌고, 맞지 않은 포로들은 서둘러 구덩이를 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었지만 포로들의 몸뚱이는 매질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죽기로 예정된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현재 살아있는 자들이었다.

논에는 아직 이삭이 피지 않은 벼가 너울너울 춤을 췄다.

어김없이 이삭이 패고 누렇게 익을 벼였지만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진주성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 대신 왜병이 넘쳤고, 벼논엔 잡초만 무성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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