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영천, 말은 많고 기는 죽고

입력 2004-08-25 15:11:45

"영천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우선 기(氣)부터 살려놓고 봐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요."

많은 영천 시민들은 '사람도, 지역도 모두 기가 죽었다'는 푸념을 달고 다닌다.

사람이 먼저 떠나니 돈이 따라서 떠나고, 이제는 인심까지 말라간다는 말이다.

이런 비관적인 모든 현상들을 영천에서는 '기가 죽었다'는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한 기관장은 실기(失氣)의 이유를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물도 없고, 지역을 대표할 산업도 없고, 장기 비전도 없는데 어떻게 여론을 모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시장의 직무정지로 시정은 일년 넘게 파행 상태고, 국회의원도 지역민의 대표자 역할은커녕 자신의 직위유지 여부도 장담하지 못한 채 법정 다툼을 하고 있으니 '영천의 힘'이라는 게 나올 여지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또 이 같은 '윗선'의 비정상적 구조는 하부(下部)의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두 명만 모여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보궐선거 이야기고, 가는 곳마다 몇몇 유명인들을 두고 인물평으로 떠들썩하다.

선거 잦은 동네치고 탈 없는 곳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보니, 제 역할 하는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없는데도 '인물은 더 많은' 희한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어느 한 사람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없어요. 뜰만하면 죽이고, 나설 만하면 흠잡고…. 지금 영천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대구 출신의 한 유지급 인사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며 영천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영천이 기를 잃고 사분오열되는 사이에 영천의 지세(地勢)는 대구, 경주, 포항 등 인접지역으로 끊임없이 빠져 나가고 있다.

또 올 연말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인구와 자본의 역외유출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는 개통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방산업단지'처럼 영천이 적자(適者)임을 내세워 앞장서 추진할 일을, 영천은 빠지고 대구시와 경북도가 논의한다는 23일의 보도를 접한 많은 시민들의 얼굴은 착잡함으로 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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