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태풍이 가고 또 하나의 태풍 소식이 들린다.
몇 해를 두고 이맘때쯤의 태풍소식은 늘 마음 졸이게 하며, 온 국민의 마음을 농사짓지 않아도 농부의 마음이 되게 한다.
태풍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인명피해 외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한창 결실을 앞두었거나 다 여문 작물이 휩쓸려가는 모양을 보게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산업화가 되고 농업이 사양길에 들었다 해도 우리 국가의 근간은 농사에 있음이 은연중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추 한 알이 둥글게 익어가는 것도 저 혼자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데, 온갖 작물을 애지중지 키워온 우주의 섭리와 농부의 마음이 얼마나 저릴 것인가, 그저 우리는 느껴지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누군가로 역할하는 것이 대추 한 알 영그는 이유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라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척박한 토양에서도 불구하고 그가 수호하고 열정을 바친 일련의 노력에 동의하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권후진국의 면모를 일신하지 못하는 허다한 인권침해의 사례와 그 불감증에 경악하게 된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끼리의 다툼에서도 인권 운운 하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상설조직화 되고, 범죄의 피의자 인권도 존중한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실제로 나 개인의 인권침해에 대해 우리는 민감해졌으며, 어떤 면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권침해의 양상이 더 다양하고 교묘해지며 고착될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라고 하는 범주가 좁아지고 유치하며 강고해지는 점도 문제다.
빈곤과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는 어떠한가. 이것은 말할 나위없는 생존의 문제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협받는 인권존중은 있을 수 없다.
비정규직노동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실업자와 빈곤계층 등의 현주소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직 이주노동자라는 말도 쓰기 전, 한 외국인 택시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 초라하고 초조한 얼굴빛에서, 해외로 취업한 우리 노동자들의 애환을 읽으며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단지 그뿐, 그들에게 냉혹하고 인색하며 차마 사람대접 한다고 할 수 없는 일부 기업인과 현재의 우리 얼굴은 읽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잊었다가 비슷한 뉴스를 볼 때 그저 한번씩 떠오를 뿐이었다.
우선 우리나라가 잘 살아야 하고, 우선 우리 노동자가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고...이런 정당화 습관 속에 어느새 이주노동자 문제는 우리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어버렸다.
기득권도 아니면서 기득권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었고, 사람을 생각하는데 둔감해져버린 것이다.
어떤 문제에 앞서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변명해야하고 변명에 익숙해져야 하고 결국 정당화와 둔감한 감성이 남게 된다.
사회적 양극화니 20대 80의 사회니 하면서 작금의 현실을 염려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그 한 극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위에 열거한 계층들이 겪는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될 것을 짐짓 모른 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명확한 인식 속에서 내가 지금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너와 경쟁하여 이길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는 것인가. 한 예로 이주노동자를 언급했지만, 사람 혹은 인권을 말하면서 굳이 참혹하거나 놀라운 사례를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일은 결국 내 책임이라는 사실이 명확할 뿐이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부의 마음이 되어지는 것처럼, 내가 아니어도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문제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입장을 바꿔보고,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줄 알고 나아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사람의 염치를 지키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당신도 나처럼 힘들었군요. 오늘은 이 말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송애경 전 포항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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