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쓰레기 몸살'산천은 울고 있다

입력 2004-08-16 09:51:24

대구 인근 피서지 뒤처리 골머리

올 폭염도 이젠 끝자락이다.

무더위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찾으면서 대구 인근 이름난 곳들은 피서객들로 붐벼 여름 내내 몸살을 앓았다.

발걸음이 조금 뜸해진 피서지에 남은 건 오물들과 쓰레기 더미들이다.

'나만 잘 놀고 가면 그만이다'라는 몰지각한 피서객들의 어긋난 피서문화의 소산이다.

'후진국형 피서문화'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연례행사다.

어쩌면 10년 후에도 '자기가 남긴 쓰레기는 되가져 갑시다'라는 부끄러운 구호가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

주민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은 경북지역의 피서지들의 쓰레기 실태를 찾아봤다.

◇칠곡 금오동천

"더위를 식히러 갔다가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고 불쾌한 감정만 가슴에 가득안고 되돌아 왔습니다.

다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

최근 금오동천을 다녀온 이성호(칠곡군 왜관읍)씨는 칠곡지역의 대표적인 명소인 금오동천을 보호해 달라는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더위를 피해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를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피서객들은 먼저 다녀간 일부 피서객들의 몰지각한 행위에 대해 원색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칠곡군 새마을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12일 금오동천 환경정화작업에 나섰다.

붙볕더위 속에서도 남녀 새마을지도자들과 북삼농협 한백희 조합장, 북삼읍 기관단체장 등 80여명이 자발적으로 쓰레기 청소에 참여했다.

이들과 함께 찾은 금오동천은 한여름을 비켜난 탓인지 막바지 피서를 즐기는 행락객들 몇 가족들만 드문드문 계곡물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백숙전문 식당촌을 벗어나 계곡 속으로 들어가자 곳곳에서 쓰레기 더미가 발견됐다.

먼저 다녀간 피서객들의 불만으로 지난달 26, 27일 양일간 북삼읍 직원들이 1차 환경정비를 했으나 언제 청소를 했느냐는 듯 곳곳에는 쓰레기더미와 오물 투성이다.

폭포까지 2㎞에 이르는 계곡들이 온통 쓰레기 천지로 돌변해 있었다.

특히 올 여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마른계곡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고여있는 물구덩이 옆 명당자리에는 쓰레기가 더욱 많다.

바위밑과 돌틈 사이에 꼭꼭 숨겨둔 쓰레기 더미들을 끄집어내자 음식물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구슬땀을 흘리며 쓰레기로 자루를 채우던 군 부녀회장 유승자(51.왜관읍 삼청리)씨는 "매년 되풀이하는 일이지만 행락객들이 조금만 신경쓰면 뒤에 오는 다른 피서객들에게 깨끗한 피서지를 물려주고 다른사람들이 청소를 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될텐데…."라고 아쉬워했다.

계곡상류로 올라갈수록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바위틈마다 촛농이 흘러 있고 굿을 한 흔적으로 돼지머리 등 음식물들이 썩어가며 코를 찌른다.

새마을회원들이 손에 든 대형자루들마다 이들 쓰레기들로 가득찼다.

이날 이들이 수거한 쓰레기는 자그마치 1t이 넘는다.

이것들을 계곡 입구로 되가져 오는 것도 큰 일이다.

땀으로 온몸을 적신 칠곡군협의회 이우용(49.지천면 덕산리) 회장은 "우리 고장을 지키는 일에는 솔선수범하지만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내년에도 찾아올 사람들"이라며 매년 이맘때면 쓰레기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 군위 화북 유원지

"처리가 곤란한 대형쓰레기를 화물차 가득 싣고와 버리고 가는 일부 얌체족들까지 있어 울화가 치밀어 못견디겠습니다.

"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자연발생유원지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귀영(66.여)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

"며칠 전에도 한 피서객이 1t 화물차에 침대 메트리스와 부서진 스티로폼 등의 쓰레기를 가득 실은 화물차를 타고와 2, 3일 놀다 쓰레기를 몽땅 하천에 버리고 갔습니다.

" 박씨는 몰래 적어놓은 차량번호를 내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계면 동산계곡과 고로면 인각사 부근 하천에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에 파리가 들끓고 악취가 심하다.

먹다 남은 수박껍질이 나뒹굴고 깨진 소주병 조각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어 위험하다.

그나마 봉지에 넣어 한곳에 모아둔 쓰레기를 뒤져보자 음식찌꺼기와 일반 쓰레기들이 뒤섞여 재활용을 위한 분리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13일 오후 고로면 화북3리 자연발생 유원지에 나와 하천 곳곳을 누비며 흩어진 쓰레기를 포대에 주워 담느라 곁눈질할 새도 없는 홍차분(70.여)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일찍부터 해질 무렵까지 쓰레기를 치우고 있지만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박옥년(68.여)씨는 음식찌꺼기와 각종 쓰레기가 뒤섞여 구데기와 파리가 들끓어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분리작업 중이다.

박명화(60.여)씨도 몰지각한 피서객이 번개탄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은 후 쓰레기를 소각한 듯한 바위 속에서 시커멓게 녹아내린 비닐 등을 긁어 내고 있었다.

군위군은 고로면 화북리 일대와 부계면 동산계곡 일대를 자연발생유원지로 정해 쓰레기수거료(소인 500원, 대인 1천원)를 징수해 쓰레기처리 등 유원지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피서객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홍혈수(53) 동산리 이장은 "환경보전과 피서객들의 편의시설 확충을 위해 부득이 쓰레기수거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수거료 냈으니 버리고 가도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쓰레기를 되가져 간다면 수거료를 되돌려 줄 계획"이라고 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 청도 삼계계곡

대구, 경산, 영천, 청도주민의 식수원인 운문댐 상류 삼계리 계곡. 여름철이면 계곡옆의 너비 7m 도로를 따라 불법주정차한 차량들이 운문령까지 약 10km 꼬리를 물고 있는 이곳에서도 쌓인 쓰레기 처리로 청도군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도로변에 들어선 식당에서도 '한 철 장사'를 위해 계곡의 물을 막아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13일 가족들과 함께 온 김진우(47.울산시 야음동)씨는 "식수용 댐이 있는 계곡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의아해했다.

친구 7명과 함께 피서왔다는 박순우(42.경산시 중방동)씨는 도로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식당업을 하는 정순희(53)씨는 "운문댐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대구, 경산, 영천, 청도지역 주민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지고 온 음식물을 수거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나머지 피서객들은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종식 운문면장은 "삼계리 계곡에서 발생한 쓰레기 양이 지난달 15일부터 지금까지 350여t에 달해 청도군 전체 한달동안 발생량보다 많다"며 "운문면에서 보유하고 있는 청소차(5t) 2대와 군에서 임시로 지원받은 2대 등 모두 4대의 청소차량으로 하루 3회씩 쓰레기를 운반해 처리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청도군에서는 하루 30명의 단속직원을 차출해 삼계리 계곡에 근무를 시키고 있지만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계리 계곡 전체를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다.

지난 1997년 운문댐상수도 보호구역 지정당시 대구시와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련 기관에서는 삼계리 계곡 일대와 경주시 산내면까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해당 주민들의 반발로 축소돼 현재 지정된 상수도 보호구역은 댐 만수위에서 상류 4km까지로 되어 있다.

청도.최봉국기자 choibok@imaeil.com

◇ 성주 포천계곡

"가져온 쓰레기를 말끔히 치워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시민 누구나 아름답고 맑은 계곡을 즐길 것 아닙니까? 놀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행락객들에게 이 같은 충고를 하면 '당신이 뭔데'라며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세태입니다.

"

성주군 가천면 화죽리 포천계곡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노윤섭(55)씨는 음식찌꺼기, 분뇨 등 각종 오물과 쓰레기로 뒤범벅돼 계곡 황폐화로 이어지자 분통을 터트렸다.

13일 노씨의 식당 주변 계곡에는 먹다 버린 각종 음식물에 수천마리의 구더기떼가 기생해 코를 찌르는 악취로 진동했다.

맥주, 소주 등 깨진 술병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종량제봉투를 아예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비닐에 넣어놓은 쓰레기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가천면사무소 백춘기 총무담당은 주말과 휴일이면 직원들이 조를 편성해 길이 7km에 달하는 포천계곡을 방송차량으로 돌며 "쓰레기를 도로가에 갖다 놓으세요"라고 외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급기야 올 여름부터는 직원들이 행락객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호소하고 있으나 행락객들의 투기행위가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한숨을 몰았다.

또 불경기 여파로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서 오는 행락객들이 상당수여서 지난 해보다 계곡 오염이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동식 화장실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아 계곡 곳곳에서 분뇨더미도 발견됐다.

휴일 포천계곡을 찾는 행락객은 약 8천여명. 길이 7km 계곡에 20여개의 간이화장실로는 턱없이 부족, '분뇨 계곡'으로 오염되고 있다.

오죽하면 관계 공무원들이 "빨리 큰 비라도 내려 쓰레기와 오물을 씻어가야 계곡이 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비를 고대하는 실정이다.

성주.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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