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파이팅-양심적 병역거부

입력 2004-08-16 08:51:00

법적 논란 일단락 향후 개정안 주목

지난5월 서울 남부지법 이종렬 판사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하급심 판단이나 구속 여부 결정 과정에서 찬반을 오락가락했으나 지난 7월15일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법적 판단은 가닥을 잡게 됐다.

그러나 이번 과정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고, 대법관 절반이 대체복무 등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론은 △헌법 위배 여부 △평등권 침해 여부 △대체복무제 적용 등을 놓고 팽팽히 맞서 왔다.

찬성론자들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헌법상 국방의 의무와 국민개병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양심의 자유냐 국방의 의무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판단 차이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는 권리 의무의 상충에서 비롯된다.

거부를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규정을 근거로 개인의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에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군 복무를 강요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리가 전개된다.

반대 쪽에서는 헌법 39조1항의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규정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라고 비판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그동안 양심의 자유를 상대적 자유로 판단해왔다.

종교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주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순수한 종교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의 일부이므로 대체복무를 통해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수 의견도 점차 공감을 얻고 있다.

◇대체복무의 방법

양심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논의되는 것이 대체복무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반대하는 측에서도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공동체의 진지하고 신중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은 얼마나 오래, 어떤 곳에서 근무하느냐로 모아진다.

병역 의무를 다하는 사람과의 형평성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일단은 개인의 자유를 더 제한받는 현역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중증 장애인이나 사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 계층에 봉사하는 사회봉사 프로그램이 제시되고 있다.

복무기간 역시 현역병보다 더 길어야 한다는 쪽이다.

훈련과 보초, 불침번 등 현역병들의 다양한 고초와 젊은 시기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 상당 기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병역 기피자 양산을 불러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병무 당국은 물론 일반인들도 상당히 우려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힘들고 기간이 긴 대체복무 제도가 정착되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고, 규율이 엄격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종교에서는 쉽게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체복무를 법으로 인정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일단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련중인 개정안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간은 36개월 정도로 현역병에 비해 8~12개월 길고 일정 시설에서 의무적으로 합숙을 하는 방침도 검토중이다.

근무 시설은 중증장애인 시설과 양로원 및 무의탁 노인 거주지, 소방서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육체노동이 필요한 곳으로 한정된다.

◇법원의 역할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지방법원 판사가 기존의 판례를 따르지 않은 점을 두고 법원의 역할에 대한 논란도 적잖이 일고 있다.

병역 거부에 대한 찬반 논란을 떠나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하는 법원 역할의 한계를 어디에 둘 것이냐는 문제제기가 된 것이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며, 이때의 법률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존의 법률을 말한다.

또한 대법원이 기존의 판례를 변경할 때 대법관 전원합의체에서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법률과 함께 판례도 권위를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법 판단은 법관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 아니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상급심의 판례에 구속되고, 법률 해석도 자의적 견해가 아니라 법질서 전체의 정신과 국가공동체의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런 법원 역할의 한계를 뛰어넘는 온당치 못한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 한편에서는 법원이 소극적 기능에서 벗어나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적극적 기능을 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변화를 뒤따를 수밖에 없는 법률은 급변하는 현대에 와서는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이 이를 메우고 사회 변화의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률에 매달리고 적용하다 보면 오히려 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법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으므로 법원의 역할도 점차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의미에서 무죄 판결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