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유엔본부의 두마리 개

입력 2004-08-13 11:23:16

유엔 본부 현관 벽에는 큰 그림이 하나 붙어 있다.

이 그림은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 그림은 개 두 마리가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가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두 마리의 목은 한개의 줄로 연결돼 있어 각각 반대편으로 갈 수가 없다.

때문에 두 마리의 개는 양쪽 편에 놓여 있는 그들의 밥을 먹기 위해 서로 당기면서 할퀴고, 물며 격렬하게 싸운다.

두 번째 그림은 두마리의 개가 싸움을 멈추고 의아해하는 모습인데 개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은 두 마리의 개가 나란히 오른쪽 밥그릇으로 가서 밥을 같이 먹는 모습이고, 네 번째 그림은 다시 함께 왼쪽 그릇으로 가서 밥을 먹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Cooperation(협동)'이다.

제목만으로도 그 뜻을 짐작게 한다.

서로 양보하고 협동할 때 비로소 양쪽이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정치권의 '국가 정체성 논란'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찜통더위보다도 짜증을 더하게 하고 있다.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여야가 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사이 우리 역사는 주변국들에게 도둑맞고 있고 어려워진 경제 때문에 서민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 "아버지 시절 여러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말씀 드린다"고 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추진과 관련, "재임 중 기념관 문제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DJ는 "정치를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인데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며 화답했으며 나아가 DJ는 자신은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며 "내가 못한 일을 박 대표가 해달라. 박 대표가 제일 적임자"라며 지역갈등 해소와 국민화합에 나서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순히 덕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왼 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내밀라"는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반목과 질시를 일삼고 있는 정치권에 모처럼 밝은 소식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도 이 같은 박 대표의 반성과 사과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며 반겼다.

박 대표는 조만간 '유신독재' 과오에 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할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한다.

모든 것은 결자해지(結者解之) 해야 한다.

지난 시절의 공과(功過)를 따지는 일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큰 꿈을 품고 있는 박 대표로서는 이 기회에 자신에게 덧씌워져 있는 그림자를 떨쳐버려야 한다.

그래야 떳떳한 정치인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은 박 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됐던 '정체성 논란'일랑은 접자. 온 국민이 힘을 합해 뛰어도 모자라는 판국에 정쟁만 벌이고 있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한때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운동으로 번졌던 '내 탓이오' 운동처럼 정부여당은 이제 남의 탓은 그만 두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그만 하자. 그리고 함께 민생 챙기기에 나서라. 국민의 뜻이고 바람이다.

유엔본부 현관 벽의 두 마리 개 그림처럼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하다가는 굶어죽기에 안성맞춤이다.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때만이 상생의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때마침 정부.여당도 금리를 인하하고 부동산세를 완화하는 등 경기살리기로 정책을 급선회했다.

한나라당도 13일 긴급 민생점검회의를 갖고 민생경제에 주력하기로 선언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젠 모두 제자리를 찾자.

홍석봉(정치1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