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가정 모두 완벽?...가능할까요
'슈퍼우먼 전성시대.'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 사회에서 여성들은 집안일은 물론 아이도 잘 키우면서 사회에서는 능력을 발휘해 돈을 잘 벌어오는 슈퍼우먼이 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과연 슈퍼우먼은 가능한 것일까. 지난 6일 낮 12시 대구시 남구 대봉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슈퍼우먼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토크 & 토크
▲안경주=슈퍼우먼이라고 토론에 나오라고 했다면 싫다고 했을 거에요. 슈퍼우먼은 제일 얄미운 여자래요. 직장 일도 잘 하면서 가정 일도 척척 해내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미울 것 같거든요.
▲이경은=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여자의 시기심도 깔린 것 같아요.
▲안=남자 입장에서야 집안일도 잘 해 놓고 직장 일도 잘 하면 당연히 좋지만 여자는 굉장히 힘든 거여요. 슈퍼우먼이라는 건 바로 남자들 시각에서 나온 얘기라는 거죠.
▲이=슈퍼우먼이라는 말을 내세워 그만큼 여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겠어요.
▲박장윤=그런데 요즘 슈퍼맨이라는 얘기도 나오지 않습니까. 저희 아버지 세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저도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아내는 괜찮다고 하지만 집안일을 많이 하거든요. 실제로 주위 얘기를 들어봐도 남자들이 직장생활을 해 돈을 잘 벌어 오는 건 기본이고 쉬는 날에는 집안 일도 해야 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슈퍼맨이 좋으세요.
▲박=세상이 변했으니 가정 자체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려면 가장으로서 그런 의식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예전에는 남자가 돈을 못 벌고 밤일을 잘 못 하면 아침을 못 얻어 먹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내에게 섭섭하게 한다든가 집안일을 아내 마음에 들게 못 하면 아침을 못 먹고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침을 먹고 나오는 남성은 능력있는 슈퍼맨이라는 우스갯소리지요.
-요즘 젊은 남성들은 배우자가 맞벌이하기를 원하고 경제력있는 여성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나요.
▲박=그렇습니다.
지난해 듀오에서 결혼 적령기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70% 이상이 장래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하더군요.
-분위기가 자꾸 이런 식이 되면 전업주부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되겠어요.
▲이=엄마 직업란에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애들은 기가 죽는다고 하잖아요.
▲안=슈퍼우먼이라는 건 굉장히 민감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돼요. 제대로 갖춰진 집에서 남편도 돈 많이 벌어오고 애들도 잘 키우는 전업주부가 직장을 가진 여성들의 꿈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소수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전업주부들은 일을 가진 여성을 부러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같은 사람도 대안이 될 수 없으니 여성을 소외시키는 여성상을 내세워서는 안되겠죠.
▲박=자신의 아내가 다른 아내들처럼 집안일도 잘 하고 직장일도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아쉬운 건 나라에서 지원해 줄 몫이 있는데 너무 미흡하다는 것이죠.
▲이=저는 은행에서 일한 지 27년 됐는데 여자 동기들은 거의 다 그만 두고 나갔어요. 육아, 가사 문제 때문에 그만 두거나 구조조정때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버텼다기 보다는 은행 일이 재미있어 일 자체를 즐기는 편인데 시어머니가 도움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육아, 가사 스트레스가 심하면 직장생활을 계속 할 수가 없죠.
▲안=저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애를 키우는 게 도저히 해결이 안 돼 그만 두고 대구로 내려왔죠.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가면 애가 떨어지지 않고 막 우는데 도무지 일을 못 하겠데요. 어디 맡겨 놓으면 계속 아파서 너무 힘들더라구요.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이=저는 퇴직하고 나면 저같은 직장여성들이 마음놓고 직장생활할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훌륭하게 만들어 운영하고 싶어요. 음식도 엄마가 해 주는 것보다 잘 해줄 수 있고 애가 아플 때도 직장에 전화해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는 일이 없도록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보육시설을 말이에요.
▲안=제가 93년에 일본에서 일할 때 애를 낳으니 보조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 300만원 정도 나오고 구립 보육원에 출산 후 30일이 지나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돼있더라구요. 보육교사 1명이 애 2명을 맡아 아이의 건강상태도 체계적으로 확인하도록 해 아픈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에게 병이 전염될 우려도 없이 정말 안심하고 키웠어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보육시설에 애를 맡기니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정말 힘들더라구요.
▲박=제 아내도 집에서 애를 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저보다 더 사회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를 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데 그 정도 체계적인 보육시스템만 갖춰진다면 여성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졸 출신으로 지점장까지 돼셨으니 대단하시네요.
▲이=운이 좋았어요. 저도 결혼하면 그만 둔다는 각서를 쓰고 입행했는데 어떻게 보면 은행은 남녀 평등이 가장 빨리 이루어진 곳이 아닐까 싶어요. 능력 위주 인사로 열심히 하면 오히려 남자보다 유리하게 승진할 수도 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아직 제도적.의식적으로 완전히 평등화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고객들도 보면 오래된 고참 여행원이 있어도 못 미더워 갓 들어온 남자 행원한테 다시 확인해 보거든요.
▲안=저도 직장에서 10년동안 근무했는데 대졸 공채로 입사하기는 여자로서 2번째였어요. 호칭을 미스 안이라고 부르고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걸 거부했더니 제 입지가 좁아졌죠.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데 극복하기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전문 직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었죠. 지금은 눈치 안 보는 만큼 책임이 크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남자 직원은 계장, 대리라고 불러주는데 여직원한테는 안 그래요. 또 여직원끼리도 고참인데도 언니라고 부르거든요. 여성들도 스스로 권리를 찾으려면 여자라고 봐달라고 하지 말고 남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대우받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박=남성들의 의식도 90년대 이후 많이 바뀌고 있어요. 이번 법무부 장관만 해도 여성들보다 오히려 남성들이 칭찬을 많이 하고 여성이 책임자 자리에 오르는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큰 반감을 가지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안=사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잖아요. 아직은 남자를 리더로 내세우는 게 사회구조상 편하지만 앞으로는 아줌마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줌마의 특징이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남편과 아이를 도와주고 잘 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이잖아요. 앞으로 가정이나 사회, 조직 어디에서든 남들과 어울려 부족한 점을 도와주고 같이 공존하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슈퍼 아줌마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정리=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사진: '슈퍼우먼 전성시대'를 두고 열띤 의견을 나누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경은, 박장윤, 안경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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