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 지하차도에 화강석이 깔려있는 이유는?
전국적으로 위명을 떨치고 있는 대구의 폭염과 깊은 관계가 있다.
도로 개통 당시, 아스팔트 재질로는 한여름에 차가 한번 오르내리면 눅진해졌기 때문에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화강석 도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운전자들이 이곳을 지날때면 차바퀴와 화강석이 부딪히면서 나는 '드르르륵'하는 소리에 미묘한 느낌을 갖기 마련. 젊은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때의 유물일 것으로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지만, 실제 준공된 것은 1971년 1월이다.
대구시내를 관통하는 중앙대로(경북도청~영대네거리 구간)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은 개통전에는 차도 남'북이 가로막혀 있었다.
바로 위에 1905년부터 운행한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보니 선로 안전문제로 인해 지하차도를 만든다며 함부로 파헤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69년 경상북도와 대구시는 중앙대로(당시 명칭은 제2경제로) 남북을 관통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경북도청과 산하기관인 대구시청 간에 일직선 도로가 없는데다 당시 중앙통(현재 중앙로 일대)의 상권 활성화가 시급해서 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선로 아래 지하공간을 뚫는다는 것이 고난도 기술이었고, 열차선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지하차도 건설때 기울기를 상당히 크게 해서 공사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건설팀이 제안한 방식이 바로 유례없는 화강석 도로였다.
주변 지상도로보다 7,8m쯤 더 깊이 파내야 하는데다 시내에서 도청 방향으로 갈 경우 차량들이 아스팔트 도로로는 눈'비에 미끄러 질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아스팔트 재질로는 여름철 대구 특유의 무더위에 눅진해져 바퀴자국에 눌리는 일이 다반사여서 도로의 내구성 강화를 위해서도 화강석 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차도에 쓰여진 화강석은 모두 19만개. 가로 세로 각각 10cm, 높이 20cm의 화강석이 길이 90m 도로에 촘촘히 박혀있다.
건설비용이 보통 아스팔트 도로에 비해 5배나 더 들지만, 유지보수가 거의 필요없다는게 장점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큰 손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지하차도 건설에 참여했던 퇴직 공무원들은 대구의 명물로 불리는 화강석 도로를 건설한데 대한 자부심을 여태 간직하고 있다.
전 대구시 종합건설본부장 남동환씨는 "이 차도로 인해 대구의 남북이 관통되고, 중앙로가 제1상권으로 도약하는 등 활기찬 도심이 형성될 수 있었다"며 "당시로는 선진공법으로 여겨진 유럽풍의 화강석 도로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이 몰려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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