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능장 목수 김규식씨-"비닐하우스 박물관 어때요"

입력 2004-08-07 11:00:39

"통신장비가 열악하던 1960~70년대에는 이 '손 사이렌'이 동네 사람들에게 긴급상황을 알리는 경보기 역할을 했어요."

6일 오후 수성구 매호동의 한 비닐 하우스 농원. 주인 김규식(59.수성구 매호동)씨가 녹슨 철제 사이렌의 손잡이를 몇 바퀴 돌리자 '우~웅'하는 소리가 제법 크고 길게 울린다.

전기 사이렌에서는 품을 수 없는 추억이 묻어난다. "이 녀석들 수집한다고 발품깨나 팔았지요." 김씨가 전깃불을 켜자 10평 남짓 되는 하우스 벽과 천장엔 발 디딜 틈 없이 모양도 제각각인 농기구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야생화 민속 꽃 농원 박물관'이라고 내건 다소 길고 거창한(?) 간판이 이해가 간다.

농기구.민속공예품 수집가인 김씨의 직업은 목수. 목수 경력 40년인 그는 지난해 10월 '대목수' 분야에서 문화재 기능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농원의 사장이자 인근에서 채소밭을 경작하는 농사꾼이기도 하다.

"옛 집을 헐다보면 못 쓰는 농기구들이 한 가득 나왔어요. '아깝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자전거에 싣고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벌써 이만큼 됐네요."

그가 목수 일을 하면서 수집한 농기구는 대략 1천여점. 웬만한 박물관 하나 채우고도 남을 만하다. 대구시내에서 구한 것도 있고 멀리 강원도, 전라도까지 가서 얻어온 것도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집품들은 논.밭에서 쓰이는 농기구, 광.부엌에서 쓰이던, 생활공예품으로 나뉜다. 쟁기, 호미, 갈퀴, 논메기, 디딜방아, 물레, 베틀, 다듬이돌, 지게, 탈곡기, 인분통, 소달구지...가깝게는 수 십년, 멀리는 100여년 이상 전의 것도 있다.

같은 농기구라도 지역에 따라 모습과 재질이 다르다. 도리깨만 봐도 경상도에서는 물푸레나무로, 전라도에서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쟁기도 경상도 것은 쟁기날이 평평하지만 강원도 것은 굽은 것이 많다. 선조들은 그 지역의 전통과 민속에 따라 농기구의 모양도 달리 만든 것이다.

몇년 전부터 김씨의 박물관에는 입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노부부는 다듬이 돌을 만져보며 추억에 잠기고 젊은이와 아이들의 눈엔 신기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요즘 내방객들을 맞는 김씨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미안함 반반이다. 볼거리야 많지만 장소가 좁아 농기구들을 보기 좋게 전시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조상들의 지혜와 손때가 묻은 농기구들을 언제까지 이 비좁은 비닐하우스에 보관해야 할지...내년 제 환갑 때는 이 녀석들이 번듯한 공간에서 손님들을 맞을 수 있을까요?"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 : 김규식씨가 수집한 농기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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