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정승의 덕목

입력 2004-08-07 11:01:14

옛날 고급관리의 능력을 재는 데 몇 가지 잣대가 있었다. '아량' '바른 소리' '청렴'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세종 때 영의정 황희는 자신의 손자와 노비들의 어린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여겼다. 심지어 여자 종이 빈정대는 말을 해도 껄껄 웃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허주는 대쪽같은 성품으로 임금에게 극간해 정도를 걷게 했다. 유관은 지붕이 새는 집에 살 정도의 청백리여서 세상을 떠났을 때 세종이 빈소에서 통곡했다고 한다. 이들 세 정승은 그래서 '명재상'이라는 칭송을 받아 왔다.

▲예나 지금이나 인재 기용에는 전문성과 업무 능력, 도덕성이 기본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포용력은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덕목들이다.

그러나 '참여 정부'는 인선의 기준이 '코드 맞추기'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올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국민들은 그런 기대감이 적지 않다.

▲허성관 행자부장관이 폭행 용의자의 칼에 찔려 순직한 두 경찰관의 영결식에 얼굴도 비치지 않아 경찰들의 불만과 비난을 사고 있다.

경찰 인터넷 게시판에는 "제 자식 장례도 모른 체하는 장관"이라는 비난과 "제 식구들한테도 이렇게 홀대를 받는데 우리가 누구를 믿고 국민의 공복으로서 희생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학적 반문까지 터져 나온 모양이다.

▲더구나 지난 2월 구치소에서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의 빈소에 조문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골프를 즐겼다는 사실도 드러나 빈축의 농도가 더해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시 허 장관은 마땅히 조문해야 한다는 행자부 간부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량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라는 이유로 차관을 대신 보낸 뒤 골프장에 나가 싱글을 기록하는 열정을 잔디밭에 쏟았던 셈이다.

▲'참여 정부'가 많은 것을 뜯어고치느라 야단법석이지만 제대로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지만, 인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국민 쪽에 가깝기보다는 임명권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물을 가려 쓰는 '코드 인사'는 결국 위의 눈치만 보는 분위기만 조장하는 게 아닐까. 허 장관이 과연 고급관리로서의 덕목을 제대로 갖췄다고 볼 수 있을는지….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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