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평화의 상징 '무등산'

입력 2004-08-03 09:00:24

10년 만에 찾아온 더위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성하의 계절이다.

무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향하는 피서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생계를 이어가기에 급급한 어려운 처지의 광주 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이 여름에도 참으로 좋은 피서지이고 안식처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분이면 무등산 입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인 금남로에서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 9.2km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큰 돈과 시간들이지 않고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무등산은 대구의 앞산과 같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팔공산에 버금갈 정도의 큰 산이다.

팔공산에 비해 약 6m가 낮은 1,187m의 우람한 산이다.

인구 140만의 도시권 안에 이처럼 크고 넉넉한 산을 둔 도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한다.

광주광역시의 동쪽 가장자리와 담양, 화순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이 산은 대체로 토산이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비길 경승(景勝)이 없으며, 특히 서석대는 마치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것 같다'고 감탄할 정도였다.

무등산 정상 북쪽으로는 원효계곡을 따라 담양군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담양군에서는 이 일대를 가사문화권이라 칭하고 있다.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시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조선조 민간원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식영정, 환벽당 등 조선조 유학자들의 정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조 사림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정수가 바로 이곳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수박등'이라는 지명을 가진 '깔끄막'(언덕의 광주 사투리)길을 경유하면서 장엄한 무등산 정상을 한눈에 만나게 된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손을 내밀면 바로 잡을 것 같이 성큼 다가온다.

금남로 한복판에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기에 일로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몇번씩 도심 빌딩 사이로 다가오는 무등산 자락을 보며 새로운 힘을 얻고 영감을 얻게 된다.

이처럼 무등산은 시민 누구에게나 참으로 영험한 산이면서도 또한 어머니와 같은 넉넉하고 친근한 산이다.

광주에 살게 된 지난 1년여 동안 무등산에 3번 다녀왔다.

정상 근처의 서석대는 한번이었고 나머지는 중봉이나 새인봉, 의상봉 등의 가벼운 산행이었다.

특히 증심사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재래식 식당에서 보리밥 한 그릇하고 내려오는 가벼운 산행은 생활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기에 알피니스트가 아니라도 이 산을 즐겨 찾는다.

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증심사 계곡을 따라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과 광주지역 사회운동가이며 한센씨병 환자들의 아버지였던 오방 최흥종 목사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현대 역사를 접하게 된다.

의재미술관, 춘설헌, 오방정 등이 바로 그 흔적이다.

이곳을 지나서 증심사에 가면 매월 한 차례 '풍경소리'를 듣게 된다.

생명과 환경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산사의 열린 음악회이다.

여기에는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여러 종교지도자들도 함께 참여하며 세파에 시달린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무등산(無等山)은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불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평등'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도 같다.

무등산은 오늘날의 광주인의 기상이요 넋이라고 할 만큼 소중한 산이다.

무등산은 5.18후의 상한 영혼을 감싸안아 준 안식처였다.

많은 사람들이 무등산에 안겨 쓰린 가슴을 달래고 억울함을 하소연하였을 것이고, 한을 승화시켜 마침내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이 살아 숨쉬는 평화의 도시 빛고을 광주의 넉넉함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점 광주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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