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기업 유치에도 7명씩 매달려
최근 해외출장을 다녀온 대구시 고위 공무원의 경험담. 오랜만에 나선 출장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직원은 대꾸조차 않은 채 여권만 쳐다봤다.
싸늘한 대응에 할 말을 잃은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지난 8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 쏟아져나오는 승객들에게 공항 직원들이 먼저 인사를 한다.
친절한 모습에 어색해하는 표정을 눈치챘는지 이번엔 사탕까지 몇 개 나눠준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도 10분이 채 걸리지않았다.
싱가포르가 왜 선진국이라 불리는 지 알 것 같았다.
▨아시아의 허브(hub)
'인텔리전트 아일랜드, 외국기업의 천국, Mr.Clean Asia... 싱가포르를 칭하는 말은 너무나 많다.
인구 413만명에 서울만한 면적의 도시국가지만 세계 최고의 경제자유 도시국가로 자리매김한 싱가포르의 오늘을 대변하는 단어들이다.
최근 중국'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경쟁국의 급성장으로 다소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싱가포르의 비즈니스 환경은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20여년전부터 펴온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유치 정책으로 850개 다국적기업을 포함, 2만개의 외국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외국기업은 싱가포르 고용의 절반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을 차지해 싱가포르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 세계 유명기관들이 내놓는 각종 평가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올해 국가경쟁력 종합순위에서도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OECD 30개 회원국, 21개 신흥경제국, 중국'브라질 등 지역경제 9개국 등 총 60개국을 평가한 이 조사에서 겨우 35위에 머문 한국으로서는 부러울 뿐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이채경 아시아'대양주 지역 본부장은 "다국적기업들이 잇따라 중국 상하이 등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여전히 기업들에게 매력적"이라며 "지난해 사스파동으로 움츠러들었던 경기도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1.7% 성장하는 등 회복세"라고 말했다.
▨우수한 공무원이 성장 원동력
싱가포르가 짧은 역사 속에서도 이처럼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는 적극적이고 깨끗한 공무원 조직이 '보이지않는 원천'이 됐다.
싱가포르는 지난 65년 독립 직후부터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의 의식이 앞서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판단 아래 우수한 공무원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학점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미리 공무원으로 발탁, 해외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유능한 민간전문가들은 과감히 영입하고 있다.
싱가포르대학 신장섭 교수(42'경제학)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의 경쟁력때문에 오늘의 싱가포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부정부패가 없기때문에 공무원들의 재량권이 상당히 큰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엔 금융회사 직원으로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해도 공무원은 싱가포르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다"면서 "공무원들에겐 '내가 나라를 이끈다'는 엘리트 의식이 유난히 강하다"고 말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고위 관료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는 천연자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형편에서 인적 자원의 질적 고도화에 노력해온 싱가포르의 독특한 교육제도때문이다.
이 곳에선 초등학교 5학년때 엘리트 교육과정으로 나갈 학생과 직업교육과정으로 나갈 학생이 갈라진다.
재능이 있는 개인에게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교육기회를 제공, 세계와 겨루며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예비 지도자들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는 것이다.
▨발로 뛰는 전문가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이같은 교육의 결과 기업인 이상의 비즈니스 감각을 갖추게 됐다.
이들은 투자자 발굴에서 금융지원 알선 등 모든 설립 지원 절차를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외국기업이 투자 문의를 해오면 주거환경과 문화'레저 정보까지 곁들여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싱가포르 관료들의 태도는 '무사안일'이 몸에 밴 우리 공무원조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게 현지 한국기업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국사회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라는 것. 특히 경제개발청(EDB), 정보개발청(IDA) 등 기업과 관련된 기관들은 외국기업들의 불편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별 담당직원을 두는 등 적극성과 효율성면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EDB 직원 공채에 지원해본 경험이 있다는 한 한국 유학생은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 능력은 필수였으며 입사 후 한국의 어떤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느냐, 그 기업과는 어떤 인적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의 한 디스플레이 제조업체가 최근 싱가포르에 1억5천만달러 투자를 결정하게 된데도 EDB직원들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이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짓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하기 하루 전날, EDB 직원들이 7명이나 한국으로 날아와 중국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설득했다는 것.
EDB 세토 록 연 영업팀장은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위해 항상 기업인과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며 "싱가포르에 투자할만한 잠재적인 해외투자자를 발굴, 집중적인 접촉을 통해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EDB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미래 기획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온 싱가포르가 주는 교훈은 명쾌하다.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으로 우수한 공무원 양성에 앞장서고, 공무원들은 책임감있게 나라를 위해 뛴다는 것.
김성중(53) 외환은행 싱가포르 지점장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한국을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싱가포르의 공무원 육성과 활용방식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며 "지식과 소신으로 무장한 전문가만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싱가포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사진: 센토사섬 페이버 산정(Mt. Faber)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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