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안동 몽진 계기 중앙진출 활발"

입력 2004-07-22 08:59:12

안동서 연구발표회

개혁 군주로, 노국공주와의 애절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림과 글씨, 거문고를 가까이 한 예술가로도 잘 알려진 고려 공민왕(恭愍王)은 642년전 홍건적 난을 피해 왜 안동으로 몽진(蒙塵.임금이 난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감)을 했을까.

공민왕은 1361년 12월 임진(壬辰)일에 안동에 와서, 1362년 2월 신축(辛丑)일에 개성으로 출발하기까지 70일동안 머물러, 당시 안동은 고려의 임시수도였다.

20일 오후 2시30분 안동시청 회의실에서는 '공민왕 안동몽진에 대한 연구' 중간발표회에서 배영동(안동대 국학부) 교수는 '공민왕이 안동의 역사와 문화에 미친 영향' 주제발표에서 홍건적 침입때 안동이 임시수도로 선택된 배경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있는 외적 침입시 안전한 지리적 조건과, 군량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민왕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안동을 염두에 두고 남향한 것은 아닌듯하고, 영남으로 몽진을 하며 적절한 보장처를 물색하다가 왕을 반기고 맞이하는 태도 등에 이끌려 안동을 임시수도로 정한것 같다고 해석했다.

공민왕 몽진후 안동 인물들이 활발한 중앙진출을 했는데 특히 안동 권씨와 안동 김씨 였고, 이로인해 안동이 중앙부대에서 더 주목을 받게됐다고 했다.

임재해(안동대 국학부) 교수는 "안동에는 풍산읍 수동의 '국신당' 하회마을의 '국신당' 청량산 산성에 '공민왕당' 등 왕과 가계신을 모시고 있어 공민왕 신앙의 중심지가 되고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안동지역에서 공민왕 관련 설화조사에서 지금까지 112개가 수집됐는데 특징은 상층 하층 구분없이 안동에서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고 했다.

안동.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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