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은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참고자료:국립 중앙도서관 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신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이현희).인물/난/미술/서책으로 읽는 한국사(정유민).인물세계사(서양편).인물 한국사.우리 궁궐 이야기.
역사서 '온궁사실(溫宮事實)'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목욕용품에는 오동나무 바가지, 놋대야와 의자, 작은 물바가지가 있었다.
또 수건도 14장 필요했다.
요즘의 목욕가운과 비슷한 용도로 쓰인 자주색 비단옷도 있었다.
왕들은 목욕할 때 옷을 다 벗지 않고 얇은 바지나 홑겹으로 된 비단옷으로 몸을 감쌌다.
물론 직접 몸을 씻지 않았다.
유모나 나이 많은 상궁이 몸을 씻겨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체로 궁내에 일정한 목욕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특별히 건강이 안 좋을 경우 왕은 '온양행궁'이라는 목욕궁으로 행차했다.
왕들은 온천욕을 위해 충남 아산에 온양행궁을 만들고 여기서 온천욕을 즐겼다.
조선의 왕 중에는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 5명의 왕과 사도세자가 이곳을 이용했다.
서울에서 온양까지 거리는 240리. 꼬박 3박 4일이 소요됐다.
왕들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 이상 온양 온천에 머물렀다.
조선의 왕 중에 온천목욕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왕은 세종. 세종은 고기를 좋아해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다.
그는 안질.두통.요통.해소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원인은 당뇨 때문이었다.
세종은 30세를 전후해 당뇨를 앓기 시작했다.
합병증까지 겹쳐 35세 이후에는 안질로 무척 고생했다.
세종은 목욕, 특히 온천욕을 통해 안질을 많이 극복했다.
그러나 온천욕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되지 못했고 재발이 잦았다.
사도세자가 온양행궁을 방문한 것은 종기 때문이다.
사도세자는 온양행궁을 찾아 7일 동안 머물며 5차례 목욕을 했다.
종기가 심했던 현종도 5번이나 온양행궁을 방문했다.
조두진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