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년 7월 15일 이슬람 교도의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 성안에 십자군 깃발이 휘날렸다.
638년 이교도의 손에 떨어진 지 460여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6주간이나 지속된 전투에서 십자군 병사들은 이슬람 병사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여버렸다.
성 점령 후 자행된 학살로 이슬람 교도의 붉은 피가 냇물처럼 흘렀고 말발굽은 피를 밟아 저벅저벅 소리를 냈다고 당시의 기록은 전한다.
'성지(聖地) 회복'의 열정이 비기독교도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면서 벌어진 결과였다.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9번의 대규모 출병이 이루어진 십자군 전쟁은 처음에는 종교적인 명분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 1차 원정 십자군 전쟁의 성격은 갈수록 변질됐다.
교회는 정신적.정치적 권위를 확대시키고자 하였고, 봉건 영주들은 전리품 획득 같은 경제적 이득에 더 관심을 보였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당시 중세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교황의 권위가 떨어졌고, 봉건귀족의 다수가 몰락했다.
비잔티움과 이슬람세계의 선진문명을 경험한 유럽인의 시야가 확대되었고, 이들 문명권으로부터 고대의 지적 유산과 동방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상인들(특히 이탈리아)은 동방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훗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운동'의 근본 저력으로 작용한다.
전쟁에서 명분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1606년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출생 ▲1795년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프랑스 국가로 공식 채택 ▲1957년 미국, 주한미군의 핵무장 계획 발표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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