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길을 묻다-(8)사막속으로

입력 2004-07-13 09:00:16

소설가 박희섭의 기행

기차는 키 작은 관목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황갈색 타르 사막의 중심부를 가로지른다.

강렬한 햇살에 물기를 뺏겨버린 노란 초목들, 군데군데 사면을 이룬 모래구릉과 선인장으로 울타리를 두른 정방형의 흙벽돌집들, 가끔씩은 여인의 가슴처럼 솟아오른 사구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차창 밖에 펼쳐진 거칠고 황량한 사막 풍경에 매료당해 좀체 눈길을 떼지 못한다.

작열하는 태양과 겨우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 염소 떼를 몰아가는 붉은 사리를 입은 아낙의 모습은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극히 원초적인 풍경이다.

시나브로 건조해지는 기차 안은 여행객들의 메마른 기침소리가 잦아진다.

닫혀진 창틀 사이로 새어든 모래먼지가 좌석에 앙금처럼 켜켜이 쌓인다.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려보지만 콧속은 잔뜩 건조하고 입은 모래먼지로 부석거린다.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가 가까웠는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느닷없이 기차가 조그만 간이역에 멈춰 선다.

승객들 사이에 잠시 작은 웅성거림이 인다.

곧 옆 칸에서 한 남자가 임시로 만든 들것에 실려 나온다.

잠든 듯한 얼굴의 오십 대 남자다.

뒤이어 다른 승객이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싸구려 비닐가방을 들고 내린다.

들것은 역사 옆 나무 그늘 아래 놓여진다.

경찰과 역무원이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기차는 곧 출발한다.

◇ 단순한 삶의 편린에 매료

덧없고 단순한 삶의 단면을 본 듯하다.

산 자는 기차를 타고 떠나고, 죽은 자는 남겨진다.

그리고 쉽게 잊혀진다.

난 기차 안에서 무망하게 세상을 등진 남자의 고독한 얼굴을 한동안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

남자는 왜 홀로 거친 사막으로 가고 있었을까. 사막에서 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기실 남자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십 중반의 나이는 누군가 애타게 기다려 줄 사람이 있는 그런 나이는 아닌 것이다.

어쩌면 남자는 사막에서 고된 삶을 마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쪽을 향해 달리던 기차가 종착역에 닿는다.

관광객들 틈에 끼여 역사를 빠져나오자 골든 시티란 이름을 가진, 과거의 꿈을 간직한 황토색 고성이 강한 햇살 아래 자태를 드러낸다.

나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릭샤왈라들과 낙타 사파리를 권하는 호객꾼을 피해 성까지 걷기로 한다.

성 외벽 부근엔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나날이 늘어가는 외국 관광객들 덕분이다.

나는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정해 여장을 풀고, 성 관광에 나선다.

13세기에 세워진 성은 주민들이 기거하고 있지만 옛날의 고풍스런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돌을 다듬어 높다랗게 세운 성채와 아름다운 레이스 문양이 새겨진 황토색 저택들이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나는 천천히 성을 둘러보며 번영했던 옛날의 자취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자이살의 오아시스란 의미의 자이살메르. 옛날에는 중국과 이집트, 유럽을 잇는 동서교역의 중계지였던 성채 도시. 수에즈 운하가 뚫리기 전만 해도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오가는 수많은 무역상과 캐러밴들이 잠시 짐을 내리고 비단과 향료, 몰약과 도자기를 사고 팔며 항간에 떠도는 얘기들을 주고받았으리라. 사막의 지형에 대하여. 나그네의 고단함에 대하여, 국경에 감도는 전운(戰雲)에 대하여.

◇ 고독이 있기에 아름다워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붉은 등불 아래 시장은 더욱 흥청거리고, 여수(旅愁)를 이기지 못한 나그네는 허벅지가 풍만한 술집작부를 찾아 나서거나, 더러는 값싼 중국 술에 취해 하소하듯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가고 오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하여. 떨어져 외로움에 홀로 울고 있을 아내에 대하여. 그리고 속절없이 저물어 가는 인생에 대해서.

사막의 아침 햇살은 살아 있음이 축복으로 여겨질 정도로 유난히 입자가 곱고 투명하다.

밤늦도록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거리는 텅 비어 있다.

나는 눈부신 햇살로 인해 더욱 명암이 극명해진 거리를 걸어 반시간 거리에 있는 가디사르 호수로 간다.

사막이 있어 더욱 푸른 아침 호수는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새들이 한가롭게 호수 위를 난다.

나는 사막이 아름다운 까닭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어린 왕자의 말을 떠올린다.

또한 나는 사막이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이유는 고독으로 텅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긴다.

오후 무렵에 지프를 빌려 타고 두 시간쯤 달려간 곳은 사막 가운데 인가라곤 열 채도 안 되는 아주 한적한 마을이다.

나는 모래흙으로 지은 허름한 초막과 거기 사는 주민들을 본다.

그들의 생활은 검소하다 못해 궁박하다.

그들의 빈한한 삶은 인간이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걸 증명해준다.

겨우 햇살과 이슬만을 피할 수 있는 좁은 잠자리, 낡은 담요, 몇 개의 물동이, 주식인 짜이와 짜파티를 익혀낼 수 있는 화덕과 한 무더기의 짚 연료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그지없이 평화롭고 해맑아 보인다.

어디에고 삶의 고민이나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인도 여행에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많이 소유한 자가 많이 행복한 건 아니라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 소유와 행복은 별개인 것

나와 함께 낙타 사파리를 떠날 사람은 붉은 터번을 두르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다.

하얀 모슬린 도티를 걸친 그는 몸이 장작처럼 말라 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강한 태양에 쉬 늙어버린 탓이다.

오랜만에 손님을 받았는지 남자는 몹시 친절하고 상냥하다.

사막에서 야영할 준비를 마친 남자는 열 살쯤 된 자신의 아들을 다른 한 마리의 낙타에 태우고 길라잡이로 나선다.

낙타는 길게 발자국을 남기며 사막 속으로 들어간다.

석양이 지면서 조금씩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남자는 모래 경사면에 야영할 자리를 잡는다.

남자가 불을 지필 나뭇가지를 주우러 간 동안 나는 소년을 바라본다.

얼굴이 작고 야윈 소년은 눈빛이 한없이 맑다.

난 그 눈빛 속에서 오랜 운명의 시간을 견뎌온 인간들의 지혜를 읽는다.

석양이 스러진 짙은 코발트빛 하늘에 전설처럼 찬란히 별이 돋아난다.사진: 마을에서 바라본 자이살메르 성의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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