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의사와 살인방조

입력 2004-07-02 16:30:44

퇴원할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사가 가족의 요청에 못이겨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한 행위는 살인방조죄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인공호흡기에 의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보호자의 요구로 퇴원을 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와 수련의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1997년 12월 발생 당시에도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6여년간의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결심이 난 것이다.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불려진 이 사건은 김모(당시58세)씨가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다쳐 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긴급 뇌수술을 받고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었다.

수술후 환자의 상태는 약간 호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입원이 불가피해지자 아내 이모(54)씨는 "치료비가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이씨는 "남편이 10여년간 무위도식해왔고 앞으로도 가족들에게 짐밖에 안될 것"이라며 퇴원을 완강히 주장했다.

▲의료진은 퇴원하면 바로 사망한다며 "돈이 없다면 차라리 도망가라"고 할 정도로 극구 만류했지만 이씨를 이길 수 없었고, 마지못해 이씨로부터 '사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퇴원시켰다.

집에 돌아간 환자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5분 만에 사망했다.

검찰은 사건이 드러나자 담당 의사와 수련의를 사법사상 처음으로 살인죄로 기소한 것이다.

▲의료계는 충격 속에 기소 취소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는 등 사회적 논란이 뜨거웠다.

"환자나 보호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를 계속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반대론이 거센 가운데 "생명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하지 않은 의사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는 찬성론도 적지 않았다.

당시 의사에 대한 유무죄를 묻는 한 네티즌 여론조사는 유죄 26%, 무죄 74%로 나타났다.

▲의료현장에선 환자측의 퇴원요구에 대해 검찰의 허가를 받아오라는 냉소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박상천 법무장관은 "살인죄 기소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앞으로 의료사건 기소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수년후의 결론은 살인죄에서 살인방조죄로 죄명이 달라지긴 했으나 해당 의사는 죄인이 됐다.

파문이 커지자 대법원은 1일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해명을 내보내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소생 가능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판단은 누가 할 것인가.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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