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이유있는 '레이건 신화'

입력 2004-06-22 14:08:55

지난주 필자는 레이건 대통령의 장례를 위한 정부 조문사절단의 일원으로 워싱턴에 3, 4일 체류하는 동안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민들에게 어떤 지도자였는지를 재확인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일리노이주 작은 도시의 이름 없는 구두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이렇다할 명문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배우로서도 정상급 연기를 한 적도 없는 평범한 미국인이었으나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한 대통령을 부시 대통령은 위대한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예우인 국장으로 모셨고 그의 장례식일은 전국적인 휴일로 선언되었다.

국회의사당과 레이건 도서관에 안장된 그의 시신에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모여든 조문객들은 10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언론이나 역사가들에 의하여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2, 3인의 미국 대통령에 포함되었다.

이번 장례행사를 보면서 필자는 동양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보았다.

그 중의 하나는 장례의 분위기가 무겁고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 축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의 인생이 이렇게 충만하고 성공적으로 완결되었기 때문에 비록 그의 사망은 슬프지만 그의 인생은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부 국민이나 미국 밖의 많은 사람들 중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낮잠을 중요시하면서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으나 시대를 잘 만났고 연기력이 좋아 밑에서 써주는 대사를 잘 읽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민의 압도적 다수와 역사가들은 그를 달리 보고 있다.

이에 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어떤 자질을 가졌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평범한 환경 출신의 대통령을 가진 우리에게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첫째, 레이건은 신념에 찬 지도자였다.

그는 정부가 해답이 아니고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기능을 줄여야 하고, 기업은 부를 창조하는 엔진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살려야 되며 외교 정책은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의 차이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힘을 옳은 쪽에 과감히 투자해야 된다고 믿었다.

실제 정치에서 그는 필요시마다 타협의 미를 살렸지만, 명백히 가치를 존중하는 대통령이었다.

둘째, 그는 대통령이 국민을 이끌면 되지 혼자서 나라를 전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부각시켰다.

카터 대통령 재임시 부통령직을 역임했던 윌터 몬데일은 '차기 대통령 앞'이란 공개 서한을 통해서 이상적인 스타일의 대통령으로 레이건을 들고 바람직하지 못한 스타일의 대통령으로 카터를 들었다.

카터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정치에 있어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다고 술회하면서, 레이건은 큰 그림을 보면서 대통령의 주요 직무를 잘 수행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셋째, 그는 낙관주의와 유머, 그리고 애국심을 잘 접목시키는 능력을 가졌었다.

낙관론과 유머는 위기에 있어서 지도자의 여유를 말해주고 있다.

1981년 레이건은 한 정신이상자의 총탄을 폐에 맞고 생사의 기로에 있으면서도 수술의사에게 "당신이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는 조크를 하였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TV 정치가 정치환경이 된 요즘 낙관론과 유머는 정치인의 자질로서 계속 더 중요해지고 있다.

넷째, 치유자(healer)로서의 자질이다.

그는 극단적인 우익 보수정책의 철학을 가졌다.

항공관제사들의 총파업시 단호하게 이들 파업의 불법을 선언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관제사는 과감히 파면하였으나, 재임 중 되도록 많은 부류의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 때 민주당원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소위 '전향투표'가 가장 많았었다.

오늘날 그의 인기를 분석할 때 연령이나 지역 직업에 관계없이 골고루 지지도가 높은 것은 그가 그룹간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양토록 애쓴 결과라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 정치상으로는 하나의 혁명을 시도하고 국제적으로는 냉전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대통령이나 그의 이미지는 평범한 시민의 유머와 낙관론 그리고 애국심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하여 그는 대통령을 그만 두고도 10년까지 인기가 계속 상승하는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종하(서강대교수.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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