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 악기들은 엄청난 경쟁 속에 살아남은 것들이다.
악기들의 경쟁은 '백가쟁명'(百家爭鳴) 아니 '백기쟁명'(百器爭鳴)이라 할 만하다.
변화하는 음악 양식과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지 못한 악기들은 도태됐다.
음악의 주소비 공간이 실내에서 콘서트홀로 바뀌면서 악기들은 큰 소리를 요구받았다.
나름대로의 공명 진동수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다른 악기들에 의해 소리가 묻히지 않을 만큼 소리가 커야 했다.
소리가 작은 악기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네 줄의 현악기 우쿨렐레(ukulele)가 그런 비운을 겪었다.
챔발로의 경우 맑고 투명한 음색을 지녔지만 소리가 너무 가볍고 약해, 음량이 크고 음색이 풍부한 피아노가 등장하면서 밀려났다.
트럼펫은 한 대의 최대 음량이 오케스트라의 포르테시모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바이올린도 원래는 양의 내장 즉 거트(gut)현을 사용했다.
거트현은 날씨 변화에 민감하고 소리도 약하다.
요즘 바이올린에 나일론이나 금속으로 겉을 씌운 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음량 경쟁과 무관치 않다.
청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악기들의 음높이 경쟁도 한 때 치열했다.
음을 약간 높이면 훨씬 더 화려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 전의 기본 조율음인 중간 A음은 요즘 440Hz로 고정돼 있지만 헨델 시대 이전에는 420Hz로, 반 음정 낮았다.
오늘날 우리는 같은 노래를 헨델 이전보다 반 음정 높여 듣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국악기도 과거 서양악기가 겪었던 요구를 요즘 받고 있다.
국악기는 사랑방에서 즐기던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음량이 서양악기보다 작은 편이다.
그러나 현대 들어 국악도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음량 확대가 가장 큰 관건이 되고 있다.
국악기의 음량을 키우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대표적 국악기인 가야금의 경우 명주실을 현으로 쓰는 데다 소리를 키우기 위해 줄을 강하게 조이면 가야금의 특유의 '농현'(왼손으로 줄을 눌러 음 높이를 변환시키는 연주기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게 된다.
전기장치를 이용해 음량을 증폭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국악기 특유의 깊은 여음과 떨림을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악기 개량 작업이 논란 속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음량 확대 문제와 무관치 않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사진: 음량이 작아 요즘 거의 사용되지 않는 네 줄 현악기 '우쿨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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