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칸에서의 '올드보이' 바람

입력 2004-05-27 13:31:46

이번 칸국제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킬빌'을 누르다"(Old boy killed Bill in South Korea)라는 영화잡지 기사가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11월 21일 나란히 개봉한 '올드보이'가 한국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을 꺾은 것이 퍽 생소했던 모양이다.

공교롭게 타란티노는 심사위원장으로, 박찬욱 감독은 심사를 받는 출품자로 칸에서 만났으니 화제를 모을 만도 했다.

'올드보이'가 세계적인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는 흥행뿐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세계영화의 '골리앗' 할리우드까지 맥을 못 추는 '김치우드'의 매서운 맛을 유럽에까지 전해준 것이다.

제작비 35억원가량을 들인 '올드보이'는 현재까지 약 400만 달러의 해외 판매고를 올렸다. 국내 동원관객 330만 명으로 제작비의 두 배가량을 거둬 들인 데다 부수적으로 50억원가량을 더 얹게 됐다. 거기에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으니 '올드보이'가 터뜨리는 샴페인은 더욱 달콤하다.

최근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지난 4월 2일 미국 4개 극장에서 '조촐'하게 개봉한 이 영화는 5월 셋째 주 들어 59개 극장으로 확대됐다. 박스오피스로 120개 개봉 영화 중 30위의 성적이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공포영화로서는 특이하게 '가장 아름다운 한국영화'라는 평을 들었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는 지난해 12월 21일 미국 젊은이가 가장 많이 보는 케이블 채널인 M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지금 한국영화는 전대미문의 성공가도를 걷고 있다. 한국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영화만은 '불황의 조류'를 타지 않는 돌연변이 마냥 무서운 팽창력을 과시하고 있다.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에 이르면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1천만 관객의 벽까지 가뿐하게 넘어섰다. 그러나 '덩치'만 컸지, 질적 수준은 여전히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코미디영화가 극장가를 채우고,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한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마케팅 수완을 앞세워 관객들의 호주머니만 털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와중에 잘 만든 영화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으니 '우려의 목소리'는 더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지난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지구를 지켜라'는 전국 관객 10만명을 겨우 채웠고,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올드보이'의 330만 관객도 예상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장화, 홍련'이나 '화산고'도 해외의 반응에 비하면 국내 관객의 호감도는 미적지근했다.

관객이 잘 드는 영화를 만들어야겠지만, 관객도 잘 만든 영화를 잘 찾아보는 시대, 그 시대가 진정한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아닐까. 그래서 칸에서 불어오는 '올드보이' 바람은 반가움과 함께, 한국영화를 좀 더 따뜻하게,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도 던져주고 있다.

김중기(i-매일팀 차장)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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