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에 대한 판결로 세간에 화제가 됐던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35) 판사는 24일 "법관은 개인에게 의무와 권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바람직한
정책 수립은 입법기관이 하는 것으로, 법관의 몫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두 건의 잇단 '진보적 판결'로 큰 관심을 끌었던 이 판사는 이날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의 집중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말을 아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풀어냈다.
그는 "판결에서 대체복무제를 언급했지만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취지였을 뿐 대체복무제가 맞다 또는 아니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무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를 말할 때 양심은 '선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라며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내면의 목소리는 존중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해 이 판사는 "헌법 교과서와 고시 잡지, 사법고시 문제에도 정답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나온다"며 "학술적으로는 그렇게 정답이 있는데 정책적으로는 지금까지 이단시돼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제가 됐던 우리법연구회 모임과 관련, 이 판사는 "열성적으로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학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죄송스럽다"며 "어떤 얘기든 다 할 수 있는 학회이고 열려있는 모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판결이 화제를 일으킨데 대해 "내 자신은 진보적이거나 독특한 사람이 아닌 데다 대선, 총선 때도 남들이 진보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후보를 찍지 않았다"며 "판결도 다른 판사들처럼 법대로 할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 판사는 "혹시 대학 재학중 운동권이 아니었느냐" 또는 "운동권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학 재학 중에는 농구를 좋아했다"며 우스개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또 전공노에 대한 선고유예는 자신이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문제에 대한 결과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판사는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전공노에 대해 연구하던 중 노동 3권이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도저히 연구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중도에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지만 단결권마저 부정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입법 취지가 최소한 교원과 형평성이 맞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판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도 이 판사는 노동법학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군대에 가는 게 당연하다"며 "생각보다 너무 큰 파장을 불러왔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찬반 의견에 대해 활발히 토론이 이뤄지는 것 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판결 결과는 판사가 책임지되 고민과 고려했던 내용을 충분히 판결에 쓸 수 있도록 판사의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며 "연수원에서 배운 양식만으로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다"고 판결 결과에 대한 판사의 책임에 의미를 부여했다.
언론 관계에 대해 이 판사는 "판사들은 열심히 일하는 데 알릴 방법도 없고 폐쇄적인 면도 있다"며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론과 접하면서 건강한 판결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사안이 유죄에서 무죄가 될 수 있는 것도 '변화의 과정' 아니겠느냐"고 전제한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처음 최소형량인 1년6개월을 선고한 경우에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질서를 먼저 말하는 것은 때로 국가주의가 아닌가 싶다. 국가는 국민을 지키라고 만든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는 여러 생각이 공존하는 것인데 나라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부인 역시 서울남부지법에서 판사로 재직 중인 법조 커플이다. 그는 "아내가 이번 판결 초고를 읽어주면서 '조금은 존중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며 "앞으로 헌재가 빨리 판단을 내려주겠지만 학계에서 좋은 논의와 이론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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