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입력 2004-05-25 10:11:34

주인공 우달은 강박증 환자다.

문을 닫을 때는 손잡이를 다섯 번씩 확인하는 등 간단한 행동조차도 반복한다.

비누나 장갑은 한번 사용하고 버린다.

식당에 갈 때는 자기만의 수저를 휴대하며, 더럽다고 느껴지면 누구에게나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오염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접촉조차 극도로 꺼린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괴팍한 냉혈 인간으로 보여진다.

그는 연애소설 작가다.

소설속 주인공의 섬세한 사랑의 감정을 완벽하게 묘사해낸다.

그러나 그의 실생활과 작품 세계는 극과 극이다.

우달과는 정반대인 인물이 등장한다.

우달의 단골 레스토랑 여종업원 캐롤과 따뜻한 성격의 이웃인 사이먼이다.

사이먼은 게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그림을 그리며 애견과 단 둘이 살아간다.

캐롤은 천식을 앓는 아들을 돌보며, 고된 일상과 맞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혼녀다.

사이먼과 캐롤은 둘 다 현실적으로 힘들고, 버림받은 상처를 갖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애견과 자식이라는 사랑의 대상이 있어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달은 우연히 사이먼의 애견을 돌보게 되면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인내심 있게 시중드는 캐롤에게 애정이 싹튼다.

의심과 불안의 노예인 우달은 점차 캐롤과 사이먼을 통해 걸음마 하듯이,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강박 장애란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을 보이는 불안장애 중의 하나다.

강박 사고란 원치 않는 반복적인 생각이나 충동을 말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뇌의 딸꾹질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불안을 야기하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강박 행동을 한다.

강박 행동으로 불안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나, 반복적인 생각은 행동을 강화시킨다.

강박증은 사회생활을 위축시키고, 가족이나 친구 관계를 악화시킨다.

강박 장애는 완벽주의적이고 지나치게 꼼꼼한 강박적 성격과는 별개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의 15~35% 정도만이 강박 장애를 가진다.

사실 아침에 들었던 노래가 하루 종일 떠오르거나, 원하지 않는 나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는 이런 우연한 생각조차도 아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나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지나치게 염려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공격적이고 우유부단한 항문기적 성격으로의 퇴행이라는 프로이트의 설명보다는, 최근에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저하가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강박증의 치료 약물 역시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들이 주를 이루며, 치료효과가 아주 좋은 편이다.

이탈리아의 마라치티 교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세로토닌 수치는 강박증 환자와 유사하게 낮아져 있다고 '뉴사이언티스트'지(誌)에 발표했다.

그럼 강박증 환자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우달은 캐롤을 사랑하게 된다.

그의 증상은 훨씬 호전된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는 조건이 겹쳐진 셈인데 강박증은 오히려 나아지고 있으니, 사랑이라는 변수는 인간이 규명하기 어려운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김성미 마음과 마음정신과 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