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길을 묻다-(1)바람을 따라서

입력 2004-05-25 09:16:17

소설가 박희섭의 기행

인도에 영혼이라도 두고 오셨나 봐요.

세 번째 인도여행이라는 나의 말에 그녀가 농조로 말한다.

나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나처럼 혼자서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는 중이다.

결이 고운 긴 머리에 갸름하면서 지적인 얼굴, 서른 남짓한 그녀는 눈빛이 맑았지만 알 수 없는 우울이 이마에 드리워져 있다.

어쩜 실연이라도 한 것일까. 그녀는 다니던 직장에 잠시 휴직계를 내두었으며, 인도는 한 달쯤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혹시 인도에 가면 무언가 삶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을까 싶어서 가는 게 아니냐는 나의 넘겨짚기에 그녀는 살짝 얼굴까지 붉혀가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왜 다시 인도야?

내가 인도로 배낭여행을 간다고 전화로 통보했을 때 동생이 보인 반응이었다.

하고많은 나라를 두고 굳이 세 번씩이나 인도로 가느냐는,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 즉흥적인 물음이었다.

그냥. 난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렸다.

어떤 납득시킬 만한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인도가 아직 동양적인 신비를 간직한 나라, 혹은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나라여서라고 즉답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정확한 답은 아니었다.

그런 시각은 여행자의 극히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이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또는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서 인도는 신비스러울 수도,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다.

속될 수도, 신성할 수도 있으며, 문명적일 수도 야만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진실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진실은 그 모든 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프리즘에서 일곱 가지 색깔이 나오는 것처럼.

그 전까지 나의 뇌리에 각인된 인도는 알 수 없는 신비함으로 가득 찬 신화와 종교의 나라였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성지이자 힌두교의 나라. 삼장법사와 혜초가 불법을 구하려 다녀간 천축국. 예전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아직도 카스트가 존재하는 나라. 왼손으로 밑을 씻고 오른 손으로 음식을 먹는 나라. 오죠 라즈니쉬와 사이 바바가 활동했던 요가와 명상의 나라.

그러나 3년여 전 인도에 도착한 내가 맞닥뜨린 건 동양적 신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리는 더러웠으며 소음과 매연과 가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는 곳마다 온통 허기에 찌든 걸인들이 들끓었고, 소와 돼지, 개와 원숭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기차와 버스는 연착하기 일쑤였고 거리의 릭샤왈라들은 진드기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도시의 담벼락은 함부로 내갈긴 소변으로 항시 검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디에고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인간적인 문화는 없었다.

인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연옥처럼 보였다.

나는 허기와 더러움, 불편함과 기다림으로 점철된 인도여행에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금 인도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 자신도 선뜻 그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어떤 설명하기 힘든 정신적 갈증같은 게 나를 자력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해답을 찾기는 힘들었다.

외려 시간이 지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두렵네요. 겁나기도 하고.

일곱 시간 남짓한 비행 끝에 마지막 기착지인 뭄바이 사하르 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올 즈음에 그녀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럴 것이다.

인도 여행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지리적, 문화적 간극 만큼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녀처럼 여성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아무튼 이제 인도는 그녀 앞에 놓여 있고,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미지로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이 그녀의 삶에 어떤 결절점이 될 수도 있고, 단순한 해외 배낭여행에 지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오직 그녀의 정신적 깊이와 색깔에 달려 있을 것이다.

곧 착륙이 완료됐음을 알리는 기내 사인등이 마침표처럼 꺼진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를 넘긴 어중간한 시간대다.

언제 보아도 낡고 후줄근한 공항 내부는 우리네 중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연상시킨다.

밤 시간대여서 한가해 보이는 공항 로비에는 더위 때문인지 무심하게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제복 차림의 공항직원들. 후각에 와 닿는 기이하면서 익숙한 향내. 난 비로소 내가 인도에 도착했음을 체감하게 된다.

청사 내 환전소에서 달러를 루피 화로 환전하며 난 얼마간 주의를 기울인다.

접혀지는 부분이 찢어져 비닐테이프로 붙인 지폐가 혹시 없는지 확인한다.

찢어지거나 약간이라도 훼손된 지폐는 돈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여기는 인도 특유의 관습 때문이다.

배불뚝이 환전소 직원을 졸라서 나중 기차표를 끊을 때 필요하게 될 환전영수증까지 챙긴 다음에 나는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온다.

몇 걸음만 걸으면 공항 바깥이다.

난 잠깐 망설인다.

내 앞에 놓여진 두 가지 방안. 하나는 숙소를 찾아서 곧장 밤거리로 나서는 것과 날이 밝을 때까지 공항 내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벌써 몇몇 젊은 배낭 여행자들은 로비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밤을 새울 궁리를 하고 있다.

지리에 어둡고, 여행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질 나쁜 호객꾼들이 기다리는 이국의 밤거리보다는 좀 불편하지만 안전한 공항 안에서 밤을 보내는 게 유리하다는 나름의 계산에서일 것이다.

난 일단 공항을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도착 첫날부터 공항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곁에 선 그녀는 궁리 끝에 공항에 머무는 걸 선택한다.

나와는 여행 코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늦은 밤 시간임에도 바깥 대기는 매캐하면서 인도 특유의 후터분한 열기를 품고 있다.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지린내마저 풍겨온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거리에서 기다리던 호객꾼들이 쇄도하듯 몰려든다.

짙은 갈색 피부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 너나없이 콧수염을 기른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Where are you going?'이란 영어로 말을 건네 온다.

그들의 호객행위는 집요하고 극성스럽다 못해 사뭇 무례하게까지 느껴진다.

나는 어렵사리 그들을 떼어내고 선불제 택시승차권 매표소로 향한다.

사진 : 어머니의 강 갠지스에는 삶과 죽음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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