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축산단지 경주 서면

입력 2004-05-07 14:27:14

-빚갚기 막막 '야반도주'

영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에 들어서면 흉가로 변한 빈집들이 도처에 눈에 띈다.

젊은이들은 없고 70대 노인들만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한 때 110여 가구 400여 명의 주민이 북적대던 곳이다.

하지만 이젠 주민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80여 가구 주민 대부분이 '상노인'이어서 마을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빈집들은 늘어나는 빚을 견디지 못해 야반도주했거나 아예 농사를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의 집이다.

가구당 부채는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대에 이른다.

더욱이 마을 일손 역시 고령화돼 생산능력이 없다.

부채를 갚을 길이 막연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아무리 지원금을 쏟아부어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정부의 농촌 회생 대책이 겉돌고 있음을 방증한다.

육계 2만마리를 사육 중인 도리1리 이장 김억수(50)씨는 "닭고기 파동에 사료값 파동까지 겹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빚이 2억원대에 이르지만 속수무책"이라며 울상이다.

마을 주민 박모(42)씨는 양돈을 하다가 억대의 빚을 지고 2년전 마을을 떠난 뒤 소식이 끊겼다.

서면은 경주시 돼지 사육 마리 수의 3분의 1에 이르는 4만여 마리를 키우는 곳이다.

서면 양돈작목반은 1998년 5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당시 100여농가가 10만 마리의 돼지를 길러 연간 50억원 이상 출하했다.

하지만 잦은 돼지 파동에다 사료값 폭등으로 서면 일대 1천300여 농가는 모두 부채를 안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초 돼지콜레라까지 겹치는 바람에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야밤에 달아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또 일부 양돈농가는 사채를 갚기 위해 외상 사료값으로 공탁한 돼지를 팔아넘겼다가 사료회사로부터 형사고발까지 당하고 있다.

4천여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던 김모(60.서면 서호리)씨는 사료값과 빚 2억원을 갚지 못해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

양돈농 박모(43.서면 아화리)씨도 재산을 정리해 부채 2억원가량을 갚았으나 나머지 빚 2억원을 갚지 못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주민 박찬(51.서면 아화리)씨는 "7년간 돼지 1천 마리를 사육했으나 수입은 없고 부채만 늘어났다"며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화농협 이규록 전무는 "소규모 축산농들이 무리하게 시설투자를 했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하고 달아나기도 한다"며 "최근 1년새 5개 농가가 부채를 갚지 못해 도주했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정부 발표로는 농가당 부채가 2천700만원대이지만 실제 부채는 5천만원에서 수억대에 달한다"며 "농촌인구가 고령화하고 경쟁력 있는 작물이나 품목이 없어 농촌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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