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대 일본경제는 세계의 부러움을 사며, '일본배우기'를 유행시켰다.
당시 서구 산업국가들이 저성장과 실업 및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4~5%의 안정적 성장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고(円高)와 국내 금리하락으로 1992년 일본의 버블(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은 10년 가까운 긴 불황의 터널에 빠져들었다.
세계는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 폄하하며 더 이상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일본을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수모를 속으로 감내하며 조용히 '구조개혁'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을 '준비된 10년'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一郞) 전 총리는 1997년 1월 국회시정연설에서 행정개혁, 재정개혁, 경제구조개혁, 사회보장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의 6대 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위가 넓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구조개혁이라 곳곳에서 개혁 저항세력이 나타났다.
이에 일본국민은 새로운 리더를 열망하였으며, 그가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이다.
그는 지금까지 총리선거에서 파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최초의 총리라 할 수 있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내각 발족 이후 입만 열면 "구조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 "성역없는 구조개혁", "정체의 10년에서 약동의 10년으로"란 슬로건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를 배경으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열도의 본격적인 구조개혁에 돌입했다.
매번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는 정치개혁에 착수, 방만한 예산안배로 국고를 낭비하며 특혜성 청탁을 일삼는 자민당의 파벌정치를 무력화했다.
나아가 자민당의 파벌 간부들이 아닌 총리가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준(準)대통령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총리와 내각 중심의 입법절차를 확립하여 독립적인 내각을 구성했다.
그의 생각은 장관들이 법안을 구성하고 이를 파벌 성향이 배제된 자민당 정책위원회의 검토를 거치게 한 후 국회에 상정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정치가 구조개혁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고이즈미 총리의 복안이었다.
또한 준비된 10년을 이루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는 경제분야 구조개혁도 단행했다.
개혁의 기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를 경제재정 겸 금융담당 장관으로 영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케나카는 일본의 금융기관이 갖고 있던 막대한 부실채권 처리를 가속화하여 상당부분 해소했다.
일본은 원래 경쟁력 있던 제조업 분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과학 및 기술분야 지원예산을 90년대말보다 40% 올린 1850억 달러를 배정했다.
각 기업도 노사가 힘을 합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매출액의 5% 이상을 기술에 투입했다.
'준비된 10년'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4분기에는 일본 경기가 호조를 보이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7%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가 금년에도 계속된다면 연 3%의 경제성장도 가능하다고 호르스트 쾰러 IMF(국제통화기금)총재가 밝혔다.
일본 최고경영자(CEO)들의 상당수도 일본경제의 실질 성장률이 올해에는 연 2%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일본 당국자들도 조심스레 일본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교육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국립대학은 금년 4월부터 민간기업과 같은 체제인 '법인'으로 바뀌었다.
법인화되면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돼 대학마다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본의 유명 국립대학인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이 유명 사학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세키 쇼타로(關昭太郞)부총장을 영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키 부총장은 증권사 사장출신으로 와세다대학 부총장이 된 후, '검약(儉約)의 악마'란 별명까지 얻으며, 단기간에 390억엔의 부채를 절반으로 줄였다.
히토쓰바시측은 세키 부총장이 와세다에서 일으킨 경영개혁을 자기대학에서도 이뤄주길 기대하여 그를 영입한 것이다.
이제 국립대학도 경영면에서의 구조개혁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이렇듯 일본은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모든 분야에 걸쳐 구조개혁을 일궈냈다.
여기서 우리는 100년 전의 러.일전쟁을 되새겨봐야 한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후 차지한 요동반도를 러시아의 방해로 청나라에 돌려줬다.
일본국민은 '와신상담'의 구호를 외치며 10년간 치밀한 전쟁준비를 한뒤 1904년 대국 러시아를 물리쳤다.
일본의 지도자가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면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자세를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
대통령탄핵으로 국론이 분열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세계로 눈을 돌려 그들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일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이면서도 한편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도 될 수 있다.
이병로 계명대 일본학과 부교수
▨이병로 교수는…
△1956년생 △계명대 일본학과 졸업 △일본 고베(神戶)대학 대학원(석사.일본사 전공) △동대학원 (박사.일본사회문화 전공) △현 계명대 일본학과 부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