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첨단화' 커닝

입력 2004-04-23 15:36:02

'커닝(cunning)'이란 말이 일반화된 지는 오래됐다.

원래의 뜻은 '교활하고 약삭빠르다'나 시험에서의 부정행위인 '속임수'라는 뜻으로 통하는 '콩글리시'다.

영어로는 '치팅(cheating)'이라 해야 맞는 표현이지만, 이 변종 영어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는 건 토착화(?) 됐기 때문일까. 우리의 커닝 역사는 가까이만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과거(科擧)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적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과장(科場)으로 쓰였던 성균관 반수당에서 발견된 '새끼줄이 들어 있는 대나무통'은 외부에서 작성한 답안지를 들여보내기 위한 커닝 도구였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중국의 경우 몇 년 전에 발견된 깨알같은 글씨의 작은 책 두 권이 명(明)나라 때의 커닝페이퍼로 밝혀졌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우리도 조선시대부터 커닝 수법이 만만찮고 다양했던 것 같다.

한 논문에 따르면, 베껴 쓰기, 답안지 바꿔치기, 대리시험, 문제 사전 유출 등이 이뤄졌다고 한다.

심지어 콧구멍 속에 커닝페이퍼를 숨긴 채 과장에 들어간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커닝 수법은 고전에 가깝다.

요즘 대학가에서 성행하는 수법은 아날로그 세대의 상상을 놀랄 정도로 뛰어넘는다.

투명한 OHP필름이나 고해상도 축소복사기를 이용한 커닝페이퍼가 등장하고, 휴대전화나 PDA 같은 IT 시대의 휴대용품들이 활용되는 사례도 발견된다고 한다.

학과목의 특성상 컴퓨터 이용이 허용되는 시험에서는 인터넷을 활용하는 커닝도 적발된 적이 있다.

▲최근 3년 동안 서울 소재 명문대 편입학 시험에 274 차례나 무전기 등을 통해 응시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일당 4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처음엔 답이 적힌 쪽지를 돌리는 방법을 쓰던 이들은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무전기를 도입해 125명(중복 포함)이나 합격시켰다고 한다.

전문가와 수험생이 허리엔 무전기, 소매 속엔 이어폰을 휴대한 채 '시험장→운동장→시험장' 사이의 교신으로 '초 업그레이드 커닝'을 했다니 기가 찬다.

▲대학들의 허술한 편입학 관리, 특히 현장감독이 엉망이라는 점은 분명 큰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토록 커닝이 만연하는 이유는 더욱 서글프다.

취업을 위한 무한경쟁 시대라서 '커닝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애써 막지 않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면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학사회가 도둑질로 오염되는 건 사회의 부정부패.오염도와 직결되는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커닝=불이익'이 주지되도록 그 적발 방법도 업그레이드 돼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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