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1588-0420

입력 2004-04-19 11:50:03

1588-0420은 장애인 종합정보안내 전화번호다.

1588은 폰 뱅킹이나 항공사 안내전화 등에 흔하게 사용되는 앞자리 국번호이고 0420은 장애인의 날인 4월20일에서 따왔다.

1588-0420은 지체 및 정신 발달 장애자들만을 위한 전화가 아니라 언제 어떤 불의의 사고로 크고작은 장애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정상인에게도 장애를 당했을 때 당장 도움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정보들을 도와주는 119나 112와 같은 서비스번호다.

그러나 내일(20일)이 1981년 장애인의 날이 지정된 지 23년째되는 장애인의 날이지만 1588-0420을 알고있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장애가 남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쯤으로 여기지만 실은 교통사고, 질병, 재난에 의한 후천성 장애인 비율이 90%를 차지하고 전세계 65억 인구 중 15억명이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겪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1588-0420이 친구의 휴대전화 번호 못잖게 중요한 생활속의 번호가 돼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농아인협회가 EBS의 대학수능강의에 대비해 자막이 들어간 학습비디오를 제작해 청각장애 수험생에게 보급하고 있을 만큼 장애인이 사회의 뒤안길에 마냥 갇혀 지내던 시대는 변해가고 있다.

한국전력도 3월분 전기요금부터는 장애인 가정에 20% 정도 전기요금을 깎아주고 있고 항공요금도 50%나 할인된다.

장애인을 무력한 소외계층으로 밀쳐두던 시대가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장애인의 날은 국회에 장애인이 4명이나 진출케 돼 장애인 복지제도개선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아직 그들에 대한 무관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난의 연가'란 영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극 영화에는 1천만명 가까이 몰리면서도 3년에 걸쳐 제작돼 2004년 동경국제 영화제에까지 출품된 장애인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는 그런 영화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수준이다.

어느날 사고로 중증장애자가 된 건강했던 여주인공이 휠체어를 타고 천사와 같은 재활의 삶을 그린 영화 '난의 연가' 〈원제목=2004 천사의 시(詩)〉 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어느 자그만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관객이 적어 장애인 무료관람에 보호자 50% 할인 광고를 내고 있을 정도다.

대중교통요금을 할인해주고 전기요금을 깎아 주는 정부차원의 복지나 EBS 수능강의 자막교재 제작처럼 장애인 단체 스스로의 자활대책 그리고 일부 봉사자들의 헌신 외에는 사회전체가 무관심함을 말해 주는 예다.

장애인에 대한 이런 무관심을 염두에 두면서 올 장애인의 날엔 과연 누가 1588-0420 번호가 더 필요한 사람들인지를 생각해 보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애의 개념을 손상장애, 활동장애, 참여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WHO의 기준으로 본다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입고 활동을 정상적 수준으로 못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참여에 장애가 있는 상태를 장애로 보는 셈이다.

그렇다면 WHO의 개념을 되짚어 봤을때 건강한 정상인이나 정상적인 정부도 정상적인 활동을 통한 건강한 사회기여를 못한다면 그들이 되레 장애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두가지 실제 상황을 두고 생각해보자.

어제 장애인 관련 한국TV프로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과 버스로 서울시내를 잠시 외출하는데 지하계단 턱과 전철 턱에 걸려 무려 3시간30분이나 걸린 현장르포 장면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전 일본 오사카역에서 전철직원이 장애인 승객이 탄 객차 출입구 앞에 접이식 목판을 들고 미리 대기하다 정차 즉시 승강구 틈위에 깔아주던 장면을 봤다.

일본 신칸센 고속철 등은 승강구가 플랫폼과 수평으로돼 휠체어나 짐이 바로 들어가는데, 수조원을 쏟아부었다는 한국의 최신 고속철은 휠체어나 짐을 들어서 끌어 올려야 되는 계단식으로 만든 우둔함은 또 어떤가.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장애인인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시설과 서비스를 하고 있는 쪽이 얼빠진 장애인인지 헷갈리게 된다.

내일 장애인의 날에는 판에 박인 베푸는 식 관심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 복지에 동참해 보는 의미에서 한번쯤 1588-0420을 눌러보는 것도 좋은 일일것 같다.

김정길(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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