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마지막 승부수...선택과 진로

입력 2004-04-13 08:59:57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12일 총선일

을 사흘 앞두고 선대위원장 및 비례대표 후보직 포기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제손으로 3번째 금배지를 반납, 정치생명의 배수진을 친 것은 당의장으로 선출

된 1.11 전당대회에서 약속한 '사즉생(死卽生)' 행보의 결정판으로 받아들여진다.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정 의장의 8년은 구질서에 대한 저항과

성장의 연속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사퇴는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국민의 정부 중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면전에서 '권력 2인자'였던 권

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을 향해 2선 퇴진을 요구했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뒤에서 유일하게 레이스를 완주해 기존 정치권에 낯설

었던 승복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민주당 분당을 놓고 망설이던 민주당 온건파를 설득, "영남에서도 의석

을 얻어야 한다"며 지역할거주의 타파를 위한 분당을 강행한 것도 정 의장이었다.

그는 당대표 취임 후에는 몽골기병식 '속도정치'를 전개, 신당 바람을 일으키는

데도 성공했다. 당의 간판이 바뀌자 4개월째 10%대 초반에 머물던 신당의 지지율은

한 달도 채 안돼 한나라당을 앞지르고 30%선을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정 의장은 한편으로는 중도보수를 표방하며 민생행보에 치중, 신당에 덧씌워져

있던 '급진' 이미지를 털어내고 당의 체질을 스펙트럼이 넓은 통합정당으로 변모시

켰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의 체질을 급격하게 바꿨지만 의사결정이 대화와 시스템에

따라 이뤄지면서 과거 계파싸움 등 갈등의 소지는 차단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이번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 점에서 정 의장의 의원직 포기는, 그 시기가 다소 빨랐을 뿐 예고된 수순

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그의 '개혁적 보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긴 '노인 폄하' 발언을 감안할 때

금배지란 기득권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현 시점에서 정 의장의 백의종군 선언은 이른바 박풍(朴風)과 노풍(老風)으로

이반된 영남과 보수층의 지지세를 되살리고, 자신이 제공한 민주당 탈당의 명분이자

지역주의 타파의 진정성을 호소하기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사퇴를 놓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도 적지 않다. 여권내 가장

강력한 예비 대권주자로서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차기선거는 어렵

고, 이런 관점에서 자신을 과감히 버리는 모습이 스스로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총선일을 전후해 정 의장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

가 실려있던 것도 이런 시각에서다.

정 의장은 총선후 현실 정치와 일정 기간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대권주자

로서 '내실'을 키우는 차원의 입각설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 주목된다.

하지만 정 의장의 향후 정치적 행보가 당장 총선결과는 물론 노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단은 정치적 해석을 떠나 그 순수성 만큼

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유시민(柳時敏) 의원은 "의장직 유지는 총선 전 사퇴에 따른 당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정 의장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총체적 불확실성에 던졌다"고 평

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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