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세고 있으면 즐거울 때가 많다. 비록 그것이 지폐뭉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돈을 센다는 것은 어쩐지 멋적고 약간 긴장이 되지만 책꽂이에 꽂힌 책을 센다거나 할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 뿐이랴. 좀 성장해서는 수학여행 길의 기찻간에서 속마음으로 세어보는 전봇대의 숫자나 터덜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차창으로 스치는 가로수의 숫자를 세어 본 경험은 오래도록 남는 추억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경험이 되어 버렸다.
전에는 이런 어머니들도 많았다. 저항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그러면 어느새 잠든 시절. 어머니와 단 둘의 그 각별한 정이 묻었던 별 세기도 지금은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것보다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더 많은 것을 잡아먹고 더 많은 점수를 따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비슷한 숫자 세기라도 엄청난 시대적 괴리감이 왠지 얄미워진다. 어느 듯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세대간의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 되어버리지는 않을지가 염려스러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라는 책이 있다. 계명대 등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저자가 지지난해에 낸 책으로 '역사와 신화 속에서 걸어나온 나무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와 그 부흥을 위해 새로운 공부론을 제시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며 "나무를 세는 것은 공부"라며 힘을 준다. 그래서 책머리부터 나무 세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를 세어 본 적 있나요"라는 물음으로 운을 떼면서 대학 캠퍼스의 나무를 세는데 한해를 고스란히 바치자 당연히 황당해진 표정들이 주위에 지천으로 깔리기 마련이다. 나아가 학생들에게는 나무세기를 과제로 내기까지 했다.
결과는 어떨까. 농담 같던 과제를 두고 학생들의 반응은 '희한하다'에서 학점이 걸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까지 다양해진다. 저자는 실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나무세기라니. 심지어 나무아래에서 야외수업까지 강행했다.
벽오동, 회화나무, 산사나무, 계수나무, 산딸나무, 모과나무, 은목서, 상수리나무 등 온갖 나무들과 함께 한 학생들.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먼지 쌓인 관념, 녹슨 인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그것은 지금 고민에 빠진 인문학에 대한 도전일까.
며칠전이 식목일이었다. 우리는 식목일을 넘기면 나무심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다. 식목일에만 나무를 심어야 하는 나라. 차라리 이번 주간은 다들 벚꽃 이야기로 만발이었다.
경주, 팔공산등. 이미 한 쪽에서는 힘없이 지기 시작해 바람에 뒹굴며 나불거리는 꽃잎들이 둘레를 지저분하게 어지럽히고 있지만 그 화려하고 호사스러우며 모든 것을 내줄 만큼 호들갑스러운 자태. 언제부턴가 이 강토는 온갖 벚꽃 축제로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벚꽃이 일본의 나라꽃이라서 한때 조심스런 반응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포기 수는 갈수록 늘어나기만 했고 왕벚나무가 원래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학설로 위안을 삼기만 했을 뿐이다. 이것도 세계화. 그렇지만 일제 암흑기에 온갖 고초를 겪은 선조들이 묻힌 선열공원에서까지 만개해 보는 이의 가슴을 화사함에 젖게 하는데는 아무리 뻣뻣한 고개라도 절로 숙여진다. 그렇지만 정작 왕벚나무는 푸대접받고 있다고 저자는 안달이다.
박달나무를 찾아 나선 저자는 가야산과 마주한 매화산에서 박달나무를 발견하고는 단군신화를 이해하고 싶었던 그 신화의 역동성을 찾는다. 결국 박달나무는 과거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후손인 현재 살아 있는 우리 나무라는데 도달하면서 의아해 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무가 왜 박달나무가 아니라 무궁화인지를.
이 밖에도 책에서는 온갖 나무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들과 대구 인근의 나무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전해준다. 고로쇠나무 물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군의 이야기,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얽힌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이야기, 용문사 은행나무 이야기, 지난 62년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도동의 측백나무 이야기, 울진의 금강송 이야기 등.
요즘도 저자는 나무를 세고 있을까. 책 말미에 저자는 나무를 세는 것은 나무의 삶을 통해 인간을 바로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나무를 세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을 세는 것이고,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갈구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심는, 나무의 본성을 무시한 나무심기는 바로 인간의 횡포요 독선이라고 역설한다.
총선이 바로 코앞. 같은 나무에서 연유했지만 이번 선거 포스터는 왜 그리 지겨워 보일까. 덕지덕지 길기도 또 엄청 길다.
누가 후보인지 세기조차 힘들다는 노인들의 말이 따갑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나무들에 대한 우리들 스스로의 횡포일 수밖에 없다면 너무 지난친 억지일까. 나무를 세듯 선거를 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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