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7)-청화산(8)

입력 2004-04-07 11:29:17

8.

이번 산행도 하늘의 가호와 도움이 있었다. 당초 생각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을 출발했다면 러셀하면서 가느라 거리로도 얼마가지도 못했을 뿐더러 도중 하산길이 없는 상황에서 무려 12시간이 소요되는 힘들고 힘든 코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고가 났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산행도중에 만난 어느 대간팀은 늘재에서 올라왔는데도 갓바위재 아래로 하산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산행팀의 역산행과 똑같은 거리였죠. 우리 대간팀이 여느 대간팀에 비해 산행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정대로 나아갔으면 후반부의 대야산에서 큰 낭패를 당했을 수도 있었겠더라구요. 게다가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그 코스를 지나갔을텐데. 지난 산행의 초반구간이었던 늘재- 문장대 능선에서 몇해전, 어느 백두대간 산행팀이 사망사고를 당했더라구요. 겨울 눈산행은 무조건 조심해야합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대학생에 따르면 대야산부근에서 지리산에서 출발한 종주꾼을 만났는데 그 사람도 대야산이 가장 위험하고 했대요. 밧줄 긴 것 두 개를 준비하라고 권고한다.

다행스럽게도. 이현섭 청화원 주인장의 기가 우리 대간팀원 전체의 기를 눌러 예정대로 출발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또 6시간 가량 적당분의 산행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것은 신의 가호도 있지만 청화원 주인장의 가호도 있었지 않았나 싶네요. 이 주인장, 아니 쬐금 아부하면 이 나으리. 고맙습니다.

이날 산행은 도상거리로는 대략 5킬로미터, 시간상으로는 당초보다 2배나 늘어난 6시간 반가량이 소요되었다. 지난 산행은 '눈꽃 산행'이었고 이번에는 눈이 무릎까지 아니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더미 산행'이었다.

이번 산행에서 의미있는 것은 그 길고도 길었던 경북 상주를 떠났다는 사실. 어떤 면에서는 상주를 통과하는 대간길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국립공원 속리산을 빼고는 거의 상주 야산을 지났다. 낙동강과 경상도란 말이 상주에서 비롯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한 곳이고 함창들을 비롯 그렇게 너른 논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대단한 상주야. 안녕 상주.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다시 궁기리 상궁으로 가서 환자처럼 맥이 하나도 없어신 유대장님을 모시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경기도 이천 한 식당에 들러 막걸리도 두잔 걸치고 보쌈에다가 냉면을 배터지게 먹고 서울로 올라와서 고양시 화정집에 오니 저녁 10시반. 가족들이 모두 반긴다. 모두들 고맙다. 혼자만 싸돌아다녀서. 너거들도 갈려면 가자. 나는 절대로 오지 말라는 소리는 안했으니 미안함은 반으로 줄인다. 뭐야.이헌태. 안녕.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면서 (2월 7.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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