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포럼-몸이 지치고 마음이 조급할때는

입력 2004-03-30 09:06:56

세상이 참으로 고약하게 돌아가고 있다.

잘못을 응징하겠다고 나선 국회가 되레 해산을 위협받고 있고, 정당은 여야 없이 봇짐 싸서 폐공장, 천막 속으로 피신했다.

헌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헌정중단이라고 하고, 제 맘에 안 들면 나라 법이 잘못이란다.

민주의 이름으로 대의기관이 능욕당하고, 헌법기관의 결정을 장삼이사가 발길질 한다.

총선이 코앞에 왔는데 정책은 간 데가 없고, 괴이쩍은 피리소리, 나팔소리만 들린다.

붉은 깃발 흰 깃발이 만장처럼 나부끼더니, 노란 잠바, 파란 잠바가 펄럭인다.

기업은 줄지어 빠져나가고 거리에 실직자는 늘어만 가는데,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주국방 목소리도 크더니, 군대 줄인다는 소리만 들린다.

죄는 권력이 면해주고, 빚은 나라가 갚아 준단다.

교육은 텔레비전에 맡기고, 문화는 만화게임이 알아서 해야 한다.

너나없이 장판에 나서 제 이름 적힌 명함만 돌릴 뿐, 도탄에 빠진 민생은 돌보는 이가 없다.

나라 밖엔 역사가 요동치고, 세상 판도가 흔들리는데, 온 동네를 둘러봐도 도무지 챙기는 이가 없다.

거대야당이 차마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당은 야당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거기서 권력을 업고 뻐꾸기 둥지 틀었던 이들이 딴 살림을 차리고 나왔구나. 정신적인 여당이라고 뻐기면서 실질적인 국정 책임은 왜 안 지나?

수시로 형세가 뒤바뀌고, 입장이 달라진다.

언젠가 보았던 낡은 필름이 다시 돌아가는 것도 같고, 악몽을 꾸고 있는 것도 같다.

몰려다니는 이들이 다 낯익은데, 그들이 하는 짓은 왠지 낯설다.

무리가 동쪽으로 밀려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멀쩡히 섰다가 서쪽으로 떼밀린 것 같기도 하다.

일순에 달라지는 말, 시침 떼고 바뀌는 얼굴, 그럴듯한 큰 소리, 달콤하게 속삭이는 소리, 정의의 편이라고 몰려 간곳엔 이익이 있다는 소문이다.

어제까지 골목을 휘젓던 패거리가 오늘 보니 대로에 대오지어 내닫는다.

둘만 모이면 개혁하고, 셋만 모이면 주먹 지른다.

보이지 않으니 어둠이나 한가지라, 적과 동지, 피와 아가 구별이 안 된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어차피 북 치고 장구 치고 한통 되어 돌아가는 판이다.

변할 것 안 변할 것이 다 돌아간다.

광대도 돌고 관객도 돌고, 주인도 돌고 객도 돌고, 하나 같이 겉돌망정 필경 모두가 돌아가고 있다.

나라가 참으로 고약한 혼돈에 빠져 돌아가고 있다.

아니, 떠내려가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흐름 속에서 중심을 가누기란 쉽지 않다.

그 혼돈 속을 꿰뚫어 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더구나 쉽지 않다.

작은 움직임에도 신경이 곤두서지만 거기 골몰하여 일희일비하다 보면 풍파에 휩쓸리고 만다.

그리하여 스스로도 어느새 혼란의 무리에 끼어들고 만다.

어째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적잖다.

그들에게 되물어 본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애써 지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꾸 없이 쳐다보는 선한 눈망울을 피하지 못해 다시 하는 말이다.

예,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몸이 지치고 마음이 조급할 때에는 일손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큰 숨을 내쉬면서 짐짓 하늘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가슴 속이 한결 시원해 진답니다.

서 있는 자리가 밝아지고 주위가 다시 보인답니다.

지난날과 앞날이 이어지면서 근본과 지엽, 본질과 꾸밈이 갈라진답니다.

엉킨 흐름이 풀리고 마침내 가야 할 길이 절로 드러나 보인답니다.

농부가 쟁기를 눕히고 아낙이 호미를 멈추면서 언뜻 언뜻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세상사 시름 덜어지고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이랍니다.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날이 다시 밝아지고 대지가 더워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김없이 그러나 부산스럽지 않게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다.

화신을 전해오는 하늘이 높디높고 천지신명이 고맙기만 하다.

순간의 멈춤에서 얻는 작은 여백이 마음의 눈을 밝힌다.

본데도 없고 앞뒤도 안 가리는 요사하고 어지러운 세상. 잠시 손길을 멈추고 하늘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좋은 봄이 이미 창밖에 와서 반길것이다.

박자 버리고 장단을 맞추면 가락이 변덕스러워진다.

이익으로 꼬드기면 천치도 교활해진다.

그리고 선민도 부채질해 몰면 무뢰한으로 변한다.

혼돈에서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자. 거기에 우리의 본심이 있다.

유 우 익 서울대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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