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이면 인생을 알 나이, 오십은 사랑 열병을 앓는 사춘기?'
새봄을 맞는 극장가를 둘러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20, 30대가 주류를 이루던 영화판에 유소년층과 장노년층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아홉 살 인생'(윤인호 감독)과 '고독이 몸부림칠 때'(이수인 감독).
이전의 영화 '죽어도 좋아'와 '집으로'가 소외된 연령층의 이야기를 다뤄 의외(?)의 인기를 끈 것처럼 젊은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지 않은 이들 작품들의 흥행 여부도 기대를 모은다.
◇아홉 살 인생
26일 개봉하는 '아홉 살 인생'은 '이 나이에도 지키고 싶은 사랑이 있다'를 외치는 당돌한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관객들의 흑백 유년을 천연색의 스크린으로 그대로 복원시킨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세상사에 좌충우돌하는 청소년기를 그렸다면, '아홉 살…'은 황순원의 '소나기'적 감수성이 물씬 풍긴다.
삶의 냄새가 물씬하고, 어른들의 정서가 살짝 가미된 잘 만든 한편의 성장영화.
위기철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1970년대 경상도의 한 산동네가 배경. 초등학교 3학년인 여민(김석)이는 얼음공장에 다니는 아빠와 잉크공장에서 일하다가 한쪽 눈을 잃은 엄마, 그리고 동생 여운이, 이렇게 세 식구와 도란도란 살아가고 있다.
그런 여민이에게 인생의 첫 번째 아홉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날 서울에서 여자애가 전학 오고, 공교롭게도 자신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첫사랑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주된 에피소드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그것과 비슷하다.
질투와 오해, 그리고 삼각관계와 화해…. 아이들의 어른스러움에 자칫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이 꼬마들의 모습이 절대 밉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배우들의 천연스런 연기 덕인 것 같다.
강원도 아이들의 풋풋한 순박함을 보여줬던 '선생 김봉두'와 비견될 정도로 '아홉살…'은 경상도 아이들의 천진함을 잘 나타낸다.
인생의 첫 쓴맛을 알 만한 나이 아홉 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이 세계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난 뒤의 소외감에서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왠지 예전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
양택조(65), 송재호(65), 주현(63), 김무생(61), 선우용녀(59), 박영규(51), 진희경(36). 출연배우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이 영화의 느낌을 알 만하다.
'아홉살 인생'이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철드는 데 나이가 없다'고 부르짖는 노인들의 영화.
스크린에서 숀 코너리나 잭 니콜슨, 다이앤 키튼 등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외화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던 국내팬들에게 이 영화는 무척이나 반가울 따름이다.
영화 제목도 패티 김의 흘러간 명곡 '초우'에서 따왔으니….
"젊은 사람들이 고독이 뭔지, 인생의 쓴맛이 뭔지 알겠나. 우리 나이의 배우들이 아니면 안 되는 영화도 있지". 장노년 연기파 배우들로만 포진한 영화 '고독이…'는 경남 남해를 배경으로 1960년대 초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도 '아홉살…'처럼 서울에서 온 여자로 인해 사랑 전쟁이 벌어진다.
왜 모든 사랑의 열병이 서울 여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여하튼 그 여자로 인해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팔팔한 이 마을 남자들은 밤마다 고독에 몸부림치게 된다.
'고독이…'가 재미있는 것은 황혼기 운운하는 그런 노인네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 속 나이 든 사람들은 마치 젊은 연인들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고 때론 질투하기도 한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사랑마저 메말랐을 거라는 편견은 버리라는 것. 또 이 영화는 소재나 시나리오의 신선함은 없지만 중견 배우들의 입담과 내공 등 관록 덕분에 빛을 발한다.
노년의 삶에 대해 유쾌하고 진솔하게 접근한 이 영화는 평균 연령 57세인 주연급 캐스팅보다 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백전노장 배우들을 이끌고 진짜 몸부림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영화로 데뷔하는 이수인(42) 감독이라는 것. 그는 영화 촬영 내내 이들 연기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