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도 찾기 쉽지 않다.
가히 일상적인 정치과잉인데 문제는 정치수준은 그만큼 높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사회의 독특한 정치관일 것이다.
유교 경전인 "효경(孝經)"은 '입신양명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게 하는 것을 효도의 마지막〔以顯父母 孝之終也〕'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입신양명이 효도의 끝인 이유는 정치가 개인의 권력.명예뿐 아니라 가문의 영광까지 보장해주는 만능키였기 때문이다.
이런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겉으로는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속으로는 너도나도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보는 시각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매몰된다.
250여년 전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붕당론'은 마치 우리의 이런 현실을 말하는 듯하다.
'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그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이해가 절실할수록 당파는 심해지고, 이해가 오래될수록 당파는 굳어진다.
… 이제 열 사람이 모두 굶주리다가 한 사발 밥을 함께 먹게 되었다고 하자. 그릇을 채 비우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난다.
말이 불손하다고 꾸짖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말이 불손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다른 날에…태도가 공손치 못하다고 꾸짖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싸움이 태도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다른 날에는…밥 먹는 동작에 방해를 받는 자가 부르짖고 여럿이 이에 응하여 화답한다.
시작은 대수롭지 않으나 끝은 크게 된다.
그 말할 때에 입에 거품을 물고 노하여 눈을 부릅뜨니, 어찌 그다지도 과격한가…이로 보면 싸움이 밥 때문이지, 말이나 태도나 동작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이해(利害)의 연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는 그 그릇됨을 장차 구할 수가 없는 법이다 ('붕당론',"성호집"권 25, 잡저)'
'말이 불손하다' '태도가 공손치 못하다'는 등의 여러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당쟁의 연원은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여럿이 이에 응하여 화답'하지만 싸움 끝의 이익은 정치인이 가져가게 마련이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당파를 뛰어넘은 이익의 정치관
이익의 냉정한 정치관은 비극적 가족사를 뛰어넘은 분석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
이익이 평안도 벽동군(碧潼郡)에서 태어난 이유는 그곳이 부친 이하진(李夏鎭)의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대사헌 등을 역임한 이하진은 숙종 6년(1680)의 경신환국으로 남인들이 몰락하면서 이곳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이익이 태어났다.
"숙종실록" 8년(1682)조는 이하진이 '분한 마음에 가슴 답답해 하다가 (유배지에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이익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둘째형 이잠(李潛)이 숙종 32년(1706) 집권당 노론을 정면에서 공격하면서 불행은 계속되었다.
숙종은 일개 유학(幼學)에 지나지 않는 이잠을 친국(親鞫)하면서 분개했다.
"죄인이 지극히 방자하다.
내 앞에서도 도리어 이러하니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러한 놈은 내가 참으로 처음 보았다.
각별히 엄하게 형신(刑訊)하라("숙종실록", 32년 9월 17일)"
숙종은 이잠을 '반드시 죽여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나장(羅將)이 신장(訊杖)을 가볍게 친다는 이유로 가두라고 명할 정도였다.
이잠은 묶은 것을 풀어주면 실토하겠다고 청했지만 거부당한 채 형장(刑杖)만 열여덟 차례 맞다 장사(杖死)했다.
한번 형신에 약 30대씩이니 이잠이 맞은 대수는 세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경종 때 소론에서 편찬한 "숙종실록 보궐정오"에 이잠이 '이 상소를 올려 스스로 춘궁(春宮:세자)을 위하여 죽는다는 뜻에 붙였는데, 그 어머니가 힘껏 말렸으나 그만두지 않고, 드디어 극형을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이잠은 노론이 세자(경종)의 지위를 위태롭게 한다고 성토하다가 사형당한 것이었다.
이잠의 주장은 훗날 경종독살설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기도 했다.
세자의 모친 장희빈을 죽인 노론으로서는 세자까지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왕조국가에서 세자의 지위를 흔드는 것도 반역이란 점에서 이잠의 상소는 남인 당론을 뛰어넘는 우국충정일 수 있었다.
이잠이 죽을 때 이익은 스물여섯으로 형의 뒤를 따라 남인 전사가 되기에 충분한 나이였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선영이 있는 안산의 첨성촌(瞻星村) 성호(星湖) 호숫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친과 형을 죽인 정치의 현상을 넘어 그 본질에 천착했다.
그러다보니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 이(利)는 하나인데 사람이 둘이면 당이 둘이 되고, 이는 하나인데 사람이 넷이면 당이 넷이 되는 것'이라며 분당의 원인도 이익다툼에서 찾은 이익은 '이(利)가 나올 구멍을 막고 백성들의 마음을 안돈하게 해야 한다'며 벼슬아치의 사익을 창출하는 정치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벼슬을 하려는 자가 적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당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
"지금 세상에 붕당(朋黨)의 화도 그 근원을 따지면 벼슬하려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혹 이로써 죄를 얻어 멀리 내쫓김을 당한다 할지라도 얼마 안 되어 그 거리의 원근을 따져서 높은 지위로 뽑아 올리니, 마치 자벌레가 제 몸을 한번 굽혀서 한 번 펴기를 구하는 것처럼 죽을 경우를 겪어도 꺼리지 않는 이가 있다('귀향',"성호사설"제23권)"
당쟁의 원인을 '벼슬하려는 데' 있다는 이익의 분석틀을 우리 정치권에 대입하면 어긋날까. 아래 글은 현재의 정당 모습을 묘사한 것 같다.
"당파의 폐습이 고질화되면서 굳이 자기 당이면 어리석고 못난 자도 관중(管仲)이나 제갈량(諸葛亮)처럼 여기고, 가렴주구를 일삼는 자도 공수.황패(遂.黃覇:중국 한나라 때 명 목민관들)처럼 여기지만 자기의 당이 아니면 모두 이와 반대로 한다('당습소란(黨習召亂)',"성호사설" 제8권))
위의 글처럼 당폐(黨弊)의 고질화 여부는 객관성 여부로 판단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정치권이나 그에 '응하여 화답'하는 일반 국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객관성의 상실에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분명한 비리이고 불법이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면 문제 삼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이익은 '편당 속에서 성장하면 비단 남에게 밝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밝은 지혜에다 결단성을 지니지 않으면 이를 뛰어넘어 높은 경지에 오르기 어렵다('당론(黨論)')'고 갈파했다.
▲정치개혁의 방법
조선의 정치는 사대부들만의 것이었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시대적 흐름과는 거꾸로 사대부 중에서도 소수 벌열로 집중되었다.
이익은 이런 왜곡된 정치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획기적인 제안을 한다.
'오늘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종당(宗黨:친척당)과 사돈붙이가 아님이 없어서…서로 결탁하여 대를 이어가면서 벼슬을 독차지'한다고 벌열정치를 비판하면서 정치 참여계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대부뿐만 아니라 서얼.농민.노비까지도 등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경(公卿)들에게 미천한 사람들의 농사일을 알게 하려면 반드시 벌열이란 칼자루 하나를 깨뜨려 없애고, 몸소 농사의 어려움을 아는 자 가운데 덕망 있는 인재를 가려 높여서 등용해야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사꾼 중에 인재를 발탁하자〔薦拔田犬畝〕, "성호사설"제10권))
그러면서 '전형(銓衡:인사)을 맡은 자로서 시골 인재를 추천하지 않은 자는 벌을 주자'고까지 주장했다.
선거 때마다 물갈이 욕구가 드높은 것은 우리 국민들이 매번 이익을 탐하는 정상배들에게 속아왔음의 방증이다.
기존 정치권을 공격한다고 그 자신이 깨끗한 개혁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밥그릇에 눈독을 들이는 정상배인지 사회의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정객인지를 구별 못하면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이익처럼 냉정한 눈으로 정치를 바라봐야 그 연원, 즉 본질이 보인다.
함석헌 선생은 1958년 8월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을 게재해 일시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살아있는 백성인가. 상대당의 태도가 공손치 못하다고 부르짖으면 그것이 싸움의 원인인 줄 알고 '여럿이 이에 응하여 화답'하는 감정만 살아있는 백성인가. 아니면 '싸움이 밥 때문'임을 알고 그 그릇됨을 꾸짖는 이성이 살아있는 백성인가. 정치개혁의 성패는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
이덕일(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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