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가 선거로 달아오르고 있다.
학급을 이끌 '반장' 선거에서부터 학생 대표자를 뽑는 학생회 회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는 학기 초 가장 먼저 이뤄지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선거는 단순히 대표자를 뽑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인 선거과정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으며, 올바른 대표상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 어린이들은 어떻게 치를까 자못 궁금했다.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가 한창이 초등학교의 선거현장을 둘러봤다.
◇열띤 홍보전
전교 어린이 정.부회장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전 대구 매호동 시지초등학교. 정문 앞부터 길게 늘어선 후보자들이 각자의 운동원들과 막바지 홍보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번에 저를 뽑아 주시면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깨끗한 학교, 왕따가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나름의 공약을 내걸고 피켓에 어깨띠까지 두른 채 유권자들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이 어른들의 선거를 방불케 할 만큼 진지했다.
어린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얼마나 알려 표로 연결시키냐는 것. 독특한 선거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윤희진(6학년 남자 부회장 후보)군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인용, "여러분의, 여러분에 의한, 여러분을 위한 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외쳤다.
허재욱(5학년 남자 부회장 후보)군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태권도 2단, 전국수학학력평가 은상 등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내세웠다.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 공약을 선보인 후보자도 있었다.
이에 앞선 9일 오후 대구 만촌동 중앙초등학교. 등록이 마감돼 후보자의 면면이 드러나자 모두들 표정이 진지해졌다.
5학년 남자 부회장 선거에는 5명이나 몰렸다.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도 3명이 입후보했다.
높은 경쟁률에 긴장감이 흘렀다.
단독 입후보자도 안심할 수 없는 형편.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하면 당선되지 못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있게 포부를 외쳤다.
이선민(6학년 어린이 회장 후보)양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대표가 되겠다"고 했다.
한형종(6년)군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어린이회를 이끌어가겠다"고 했다.
공약은 각자 달랐지만 한결같이 정정당당한 공정선거에는 모두들 동의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교육장
요즘 각급 학교 선거는 모든 과정이 학생들에 의해 이뤄진다.
교사나 학부모의 개입은 없다.
대개 학교가 정한 '선거법'에 의해 선거 공고 전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먼저 꾸려진다.
입후보자 등록이 끝나면 기호 추첨, 선거인 명부 작성, 투표소 설치, 투.개표, 당선자 공고, 임명장 전달까지 모두가 학생들에 의해 치러진다.
선거운동은 엄격하게 관리된다.
기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 후보자당 2~5명의 운동원을 둘 수 있게 한다.
등굣길이나 쉬는 시간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방과 후나 학교 밖 선거운동은 철저히 금지된다.
벽보도 후보자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정해진 장소에 붙여야 한다.
인쇄소에 주문,제작한 포스터로 선거운동을 벌이는 행위는 선거법 위반이다.
시지초교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매화(6학년)양은 "한 점 의혹도 없이 공정하게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선거관리위원들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선물 공세나 향응 제공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국 대구 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장은 "학교 선거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공평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민주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장차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그릇된 풍토 여전
아직도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성인들의 선거에서나 볼 수 있는 혼탁 양상을 빚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관심이 가장 큰 원인. 반장이나 어린이회 임원이 되면 일찍부터 리더십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 교사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 한다.
더욱이 한 번 임원이 된 아이들은 다음 학년에도 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들끼리 '그룹'을 형성하기도 해 저학년 때부터 과열로 치닫기도 한다는 것.
한 교사는 "자녀의 당선을 위해 학부모가 나서서 선물을 돌리거나 간식을 사주는 경우도 있다"며 "친구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거나 편가르기를 하는 모습까지 있어 선거 후 부작용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사전 선거운동을 못 하도록 개학과 동시에 선거를 치르거나 투표 일정을 당일 아침에 통보하는 '기습 선거'를 치르기도 한다.
아예 돌아가면서 한번씩 임원을 맡기는 곳도 있다.
중앙초교 이숙희 교사는 "가치관이 미처 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자칫 물질 선거의 병폐를 모르고 어른들의 그릇된 방식을 답습하게 될 수도 있다"면서 "올바른 선거풍토를 바로잡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고 했다.
글.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 :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회장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 지지자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열띤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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