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소수자에 힘이 되는 네트워크

입력 2004-03-02 09:05:50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위원회나 여러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많다.

가는 곳마다 젊은 여자는 나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 어느 공공기관 위원회의 간담회가 열렸는데, 관계 공무원을 비롯한 위원들이 열분 정도 모였다.

그런데 그날 참석자들이 나누었던 대화의 대부분은 "누구누구 있잖습니까. 아, 그 사람이 말이죠. 그 사람이 바로 누구누구 아닙니까" 같은 그들의 인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미 지역에서 오랫동안 고등학교, 대학, 출생지, 성과 본 등의 요소들에 의해서 씨줄과 날줄로 얽힌 복잡하고도 명쾌한 인맥들에 의해 그들은 모두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고 유용한 인적 네트워크는 개인의 성향 따라, 하는 일에 따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학연.지연.혈연과 동의어가 되어있다.

필자는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학교였고, 더욱이 이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다.

게다가 학연.지연 따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한창 여성들의 세력화 얘기를 많이 나눈다.

한 유명 아나운서는 여자들은 문상을 갈 때 여기저기 연락해서 함께 가는 문화를 모른다며 그녀도 지인들이 상을 당했을 때 자기만 살짝 다녀오곤 했다 한다.

어차피 여자들은 학연.지연에 기대 사회생활 하기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네크워크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취약하다는 얘기다.

대구엔 요즘 지역 인재가 유출되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학문적.직업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대구.경북보다 여건이 나은 곳으로 가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은 얼마나 권장할 일이고, 뿌듯한 일인가. 이것을 인재유출이라며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유입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대학 때문에 혹은 인사이동으로 대구.경북에서 살게 된 사람들은 하루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들은 대구만큼 타 지역 출신자들에게 배타적인 도시도 없다며 불평을 하곤 한다.

이젠 어느 곳도 철밥통처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곳이라도 자기의 능력만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눌러앉는다.

대구가 그런 곳이 되길 원한다.

얼마 전 어느 방송 PD로부터 "대구에 내려온 걸 후회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 또한 나처럼 이곳에서 하나 밖에 없는 여자 PD인데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리란 느낌을 받았다.

이제 대구에서 타 지역 출신자, 젊은이, 여성들에게 지역에 새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겨보자. 학연.지연.혈연의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는 선택된 자들만이 아닌 그들이 쳐놓은 오래된 성벽 바깥에 있는 자들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 진실로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는 오히려 기댈 곳 없는 소수자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박선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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