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대란 '장기전' 대비해야

입력 2004-02-27 14:02:35

철강과 전기동 등 원자재 대란으로 국내 건설 및 전기업체들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철근 부족과 가격급등으로 애를 먹고있는 것과 함께 전기업체들은 국제 전기동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급등 영향으로 전선값이 동반 폭등한 가운데 절대 수급량이 달리면서 일손을 놓아야할 지경에 처해 있다.

국내업체들은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원재료 구매 부담 증가로 자금압박까지 받고 있지만 원가 상승분을 납품가격에 반영시키지 못해 채산성까지 악화되는 '3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회복세와 중국경제의 급성장이 맞물린 상황에서 일어난 국제 원자재 파동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적다는 데 있다.

▨원자재값 왜 오르나?

세계 철강수요 증가와 중국의 수입 급증에 있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과 수급 차질이 유발된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의 '매점'에 있다.

업계는 중국이 오는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건설.건축물량을 한꺼번에 발주하면서 원자재는 물론 관련제품을 집중 수입하면서 국제시장에서의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거대 중국이 호황을 이루고 있는 건설시장에 필요한 원자재와 관련제품을 매집하면서 전 세계의 물량 부족난을 가중시키면서 국제 원자재가격을 가파르게 상승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는 3중고

철근과 전기업체들은 제조사들이 생산과 출하를 중단하다시피함에 따라 전국 대리점을 뒤져 재고물량을 조달받고 있으나 물량이 절대 부족한 데다 가격도 제조사로부터 구입할 때보다 20%가량 더 비싸 신규사업 수주를 포기하고 있는 등 '3중고'를 겪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상황으론 작년 공사수주 시점과 올 시공시점의 자재가격 차이가 커 공사를 하고도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걱정이 태산이다.

또 올 작업물량을 지난 1월에 주문했는데도 제조사는 2개월이 되도 제품공급을 해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 공기를 맞춰야 하는 업체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필요량을 10일 전에만 발주내면 공급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2, 3개월 전에 발주를 낸 물량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는 원석을 제련, 전선을 만드는 대형업체 3개사를 비롯 대형업체로부터 동제련품을 받아 전선을 만드는 중소업체 60여개가 있다.

대부분 시공업체들은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금력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업체의 경우 작년 수주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기공사 매출기준으로 전국 100대권에 드는 지역의 한 업체는 올 초 수주한 4, 5건의 전기공사를 공기 내에 할 수 있을는지 현재로선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체 필요 물량의 20% 이하를 조달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80%를 무난하게 공급받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도 관급공사의 경우는 수주 후 자재가상승분을 어느정도 반영해줘 물가변동에 따른 비용손실 규모가 적지만 민간업체로부터 시공수주를 한 업체는 가격변동에 인한 차액을 메울 방법이 없어 경영난이나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국에 24개 크고작은 전기공사 현장을 두고있는 지역의 한 전기업체는 규모가 큰 중요 사업장에 우선 물량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으나 절대량 부족으로 막판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평소 거래하던 대림점 측에 잔량 전량을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해 두고 있다는 것.

▨신규사업 수주도 포기

이처럼 제품생산.공급과 수요가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이르자 시공업체들은 신규 공사수주를 엄두도 못내고 있다.

심지어는 발주처를 상대로 작년 계약 물량에 대한 취소를 요청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또 대리점이나 제품 제조사가 작년에 한 거래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업체의 경우는 특정 규격제품을 구입하지 못하자 값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규격이 더 큰 제품으로 대체, 시공하는 웃지못할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한편 전기공사물량(전국시장)의 경우 대구 10%, 서울 30%, 수도권 40%, 부산15%, 기타 5% 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이상 무"

대구지하철 2호선의 경우 현재 토목공사를 끝낸 상황이기 때문에 철근부족에 따른 공정차질은 없다.

또 H형강의 경우도 이제 철거해야할 시점으로 문제가 안되고 있다는 게 대구지하철건설본부의 입장이다.

▨언제까지 지속될까?

업계에선 5,6월쯤이면 철강이나 전기동 등 원자재 가격이 인하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는 쪽도 있지만 이제 막 불붙은 중국 건설시장이 쉽게 냉각될 기미는 없어 중국이 개입한 원자재 및 제품시장의 파동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책은 없는지?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좀 더 기동성 있게 대응했더라면 시장상황이 이정도로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란 게 업계 측 시각이다.

중국이 원자재를 싹쓸이 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국제시장 동태에 민감하게 대처했다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

정부는 최근 원자재 파동이 확산되면서 촉발된 수급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기동, 니켈, 알루미늄 등 중소기업이 수급난을 겪고있는 품목에 대해 비축물량 방출을 당초 계획보다 80% 이상 확대하고 정부 비축 재고를 점차 늘려 나가기로 했지만 시장을 안정시킬 재료로는 충분치 않다.

따라서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단기적인 대책에서 탈피, 중간재 및 완제품보다 관세가 높거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 관세를 잠정적으로 무세화하거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기업을 위해 원자재를 싼가격에 대량으로 공동 구매하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분을 최소화하는 등 장기적인 대책도 펴야한다.

또 중장기적으론 해외 자원개발을 위한 자원외교를 강화하고, 기업의 해외 자원개발도 적극 지원하는 등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워 나가야 한다.

황재성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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