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time-소수서원

입력 2004-02-26 08:59:53

소수서원(紹修書院) 학사(學舍)들 처마 사이로 계절이 새롭게 열린다.

쏟아지는 봄볕에 뜨락 아래 잔설(殘雪)도 힘을 잃고 땅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왕조 5백년, 선비의 절개가 서려 있는 곳. '꺾일지라도 휘지 않는다'는 사림(士林)의 정신이 오롯이 서원을 맴돈다.

갓 하나, 책 한권으로 한세상 족했던 그들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훈풍을 따라 귓전을 때린다.

3월을 목전에 둔 서원 마당엔 이젠 겨울 기운이 사라지고 봄 햇살과 청량한 솔바람이 가득하다.

◇소수서원-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서원. 사적 제55호.

1542년(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현(儒賢) 안향(安珦)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이듬해 학사를 옮겨 백운동(白雲洞)서원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다.

1550년(명종 5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선생이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게 한 최초의 사액서원.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중의 하나로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편액이 걸린 강당과 직방재(直方齋), 일신재(日新齋), 학구재(學求齋), 지락재(至樂齋) 등 학사가 남아 있다.

◆선비정신이 숨쉬는 곳-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안동의 도산서원과 함께 우리 유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영주를 선비의 고장으로 부르는 것도 이 소수서원에서 명현(明賢)들이 많이 배출된 덕분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정문까지 가까워서 좋다.

정문 앞 오솔길 사이로 하늘에 닿을 듯한 수십 그루의 적송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다.

기이한 생김새나 크기는 서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쏴'하며 바람에 나뭇가지가 울리는 소리에 가슴마저 시원하다.

적송들 사이에 서 있는 500년 묵은 은행나무 두 그루에는 겹겹이 주름이 앉아있어 세월의 풍랑을 헤쳐온 우리 민족의 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문인 홍전문(紅箭門)에 이르면 강학당과 맞닥뜨린다.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다.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놓고 배흘림 기둥 양식이 특이하다.

소수서원은 강학당을 중심으로 도서관인 장서각, 기숙사인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 사당 등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혼란스럽지 않은 품격이 엿보인다.

소수서원의 건물 배치는 학교를 앞에 세우고 사당을 뒤에 세우는 중국식의 서원 양식이 아닌 학교와 사당을 나란히 세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양식을 택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주목을 끈다.

계단식으로 층층이 올려진 돌담이 무척 인상적이다.

적당히 이끼가 끼고 변색된 기와는 꼭 조선시대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다.

서원 뒤편에 세워진 교육관 전시실에 들르면 서원답사는 마무리. 사료전시관에서는 안향 선생 영정(국보 111호), 주세붕 선생 영정(보물 717호), 이원익 선생 영정과 퇴계의 친필 역범도 등 유물이 전시돼 있다.

교육관 왼편 쪽문을 나서면 죽계천(竹溪川)의 물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조선시대 촌락 재현한 선비촌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가다보면 조선조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을 만나게 된다.

1만7천400여평 부지에 모두 164억원을 들여 들어서는 선비촌은 기와 7채, 초가 5채, 누각, 정자, 성황당, 연자방아, 물레방아, 저잣거리 등 조선시대 촌락을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으로 5월쯤 완공예정. 이 선비촌은 영주로 유배된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단종복위 운동을 벌이다 발각돼 불타버렸던 당시 촌락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조선시대 각계 각층의 생활상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상.중.하류 가옥을 골고루 배치했다.

기와집은 경북 북부의 대표적 건축 양식으로 내외부가 막힌 ㅁ자 형식과 트인 ㅁ자 형식을 하고 있다.

초가는 부엌의 연기가 빠지는 까치구멍집으로 만들었다.

실제 영주 지역에 있었거나 현존하고 있는 고택을 모델로 지었다.

소수서원내 강학당과 도로 개설로 철거된 효열행각, 영주시 위산면 우금촌의 두암고택(도지정문화재), 천민이면서 퇴계로부터 학문을 배웠다는 대장장이 배순의 대장간도 지어져 있다.

선비촌의 가장 큰 매력은 숙식이 해결된다는 점. 기와나 초가에 여장을 풀고 세면을 한 뒤 식사는 저잣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

또 양반층 코스에서 강학과 다도.서예.한문 등을, 서민층 코스에서 짚신 삼기 등 공예체험도 할 수 있어 봄방학을 맞아 가족여행 코스로 좋을 듯싶다.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062.

*무량수전 발아래 소백산맥 겹겹

◆천년의 꿈을 간직한 사찰-부석사

영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가 부석사(浮石寺). 소수서원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다.

부석사는 1천500년 전인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찰로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 보물 4점 등 각종 문화유산을 간직한 '보물 창고'다

부석사에 오르려면 주차장에서 약 20여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합장하고 잠시 무량수전을 등지면 병풍처럼 첩첩이 둘러싼 소백산맥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부석사는 사계절 모양을 달리한다.

매화.산수유.철쭉이 봄 여행객을 반기고, 여름이면 백일홍이 경내를 물들인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와 단풍이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겨울이면 눈꽃으로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부석사에서 맞는 석양은 고즈넉한 산사와 한 몸을 이룬다.

무량수전에서 눈여겨볼 것은 바로 조형미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흠결이 없어 문화재적 가치를 더한다.

수평의 균형을 이룬 추녀와 수직으로 힘차게 뻗은 기둥의 선은 천년이 지난 지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글.전창훈기자

사진.박노익기자

▶가는길

중앙고속도로→영주 IC→28번 국도→서천교에서 좌회전→935번 지방도→순흥면사무소에서 우회전→931번 지방도→소수서원→931번 지방도→코리아나호텔에서 우회전→부석사

영주.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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