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들의 넋이 이젠 편안히 잠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화폭에 담았습니다".
지난 18일 오전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앞에서는 대구지하철 참사 1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슬픔이 묻어나는 추모 제단위에는 사진 대신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영정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이날 추모식에 사용된 영정 초상화는 모두 조경현(38), 김형택(37), 현상훈(38)씨 등 3명의 공동 작품이다.
추모식 이틀 뒤인 지난 20일, 중구 삼덕동 마고재 미술관에서 이번 작업에 참여했던 조경현씨를 만났다.
"세밀한 표현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고려했습니다.
풍부한 느낌을 주는 목탄을 사용해 흑백 대비를 강하게 주었고 여백을 최대한 살렸죠".
작업이 시작된 건 지난 5일. 보통 영정 사진의 경우 하루에 1, 2장을 그리는 것이 고작이다.
어림잡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들은 5일간 합숙을 하며 하루에 10시간씩 작업에 매달린 끝에 완성해냈다
조씨를 비롯해 이번 작업에 참여한 세 사람은 모두 거리의 화가들이다.
축제 현장이나 길거리에서 다른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일이 생계 수단. 하지만 조씨는 실물이 아닌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많은 초상화를 그려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사진은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리기가 참 어려워요. 상상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사진이 주는 인상 자체에 얽매이기 쉽죠".
사실 처음 작업실로 영정들을 가지고 왔을 때 조씨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통 속에 가신 분들의 영정이라 괜히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웠다는 것. 결국 이들은 작업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면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10여 년간 거리의 화가로 일하다보니 재미있는 경험담도 많다.
선배와 술을 마시던 남자가 찾아와 선배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마음을 추상화로 그려달라고 해 당황한 적도 있었고 조씨의 딸아이를 그린 초상화를 보며 너무 슬퍼보인다고 울던 대만 출신 감독도 있었다고 했다.
"영정 사진을 그려달라던 한 할머니로부터는 절대로 예쁘게 그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주름살 하나하나에 지금껏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이유였죠".
조씨는 최근 미술계의 화두는 '소통'이라고 말했다.
현대 미술이 작가의 개인적 성향에 지나치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화랑이나 미술관이라는 갇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는 홍대 앞의 예술 프리마켓이나 희망시장 등처럼 누구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민작가'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벌,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는 것은 모두 예술작품이라는 논리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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