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웃자, 대통령부터 좀 웃자

입력 2004-02-23 13:46:40

어제는 봄비가 내렸다. 봄이 되면 대문앞에 입춘대길(立春大吉).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같은 덕담을 써붙이는 풍습이 아직도 시골마을에 가보면 간간이 눈에 띈다.

'웃는 집안에 만복이 들어온다'는 기복(祈福) 덕담이 실제로 좋은 운(運)과 건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헛말이 아니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생각, 밝은 마음을 지니면 신체의 리듬부터 액티브하게 바뀐다. 똑같은 음식을 놓고도 '먹음직하다, 감사히 먹겠다'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면 입속 침의 소화력이 10배 이상 증가된다는 연구도 그런 예다.

침의 소화력 연구로 박사가 됐다는 일본 후쿠야마의 사사키류도 박사는 보통 사람 침이 타액량의 1천500배 분량의 전분을 소화시키지만 감사하게 잘 먹겠다는 마음으로 먹었을 때는 2만5천배까지 소화력이 상승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늘 투덜대고 상대를 불평하며 못마땅해 하는 마음으로는 희망이나 꿈, 행복, 건강과 같은 아름다운 말에 담긴 운(運)을 내쪽으로 끌어당길 수 없다는 점을 옛 선조들은 대문짝 입춘 덕담으로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 새봄에는 소문만복래의 개운(開運)을 위해서라도 좀 웃고 살아봐야 겠는데 많은 사람들의 요즘 기분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덕담하나 따라하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거꾸로 이렇게들 투덜댈 지는 모르겠다. "웃으면 복이 오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웃을 일이 있어야 웃고 복을 받지, 로또 당첨이든 뭣이든 일단 복이 먼저 와주면 그때는 꼭 웃어줄텐데"라는 식으로 -.

그렇다. 솔직히 근처에 다 와 있는 복이 달아난다해도 웃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을 정도로 입맛 떨어지는 세상이라는 생각들인지 너도나도 화가 나 부어오른 얼굴들이다.

집안 어른이 아침부터 부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온 가족의 분위기도 어둡게 가라앉듯이 대통령부터 별로 신나고 밝은 얼굴이 아니다. 취임 1년내내 일부 언론이 못마땅 하다며 엊그제 TV대담때까지도 부은 얼굴이다.

그분 탓만은 아니지만 부하들인 공직자들도 총선 끝나자마자 부패와 직권남용 처벌 대상으로 미리 점 찍어 두는 불유쾌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으니 백성들도 덩달아 불안하고 웃음이 가실 수밖에 없다.

경제인들도 이미 이래저래 부아가 치밀어 중국으로 중동으로 앞다퉈 생산시설 뜯어 나갔거나 남아 있는 기업인도 정치자금 뜯긴죄로 연일 불려다니느라 웃을 기분이 못된다. 청년들은 8.8%의 엽기적인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치안 하나는 괜찮다던 나라에서 이제는 부녀자들까지 납치 폭행 등 허술한 치안에 떨고 있고 정치인들은 낙천.탈당 다툼으로 부은 얼굴을 넘어 사생결단, 아귀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웃음과 유쾌함이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온국민의 얼굴이 화나고 부어올라 벌레 씹은 표정을 한채 웃음이 사라져가는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화나고 부은 얼굴을 하고있는 사람에게는 지나가던 벌(蜂)도 한번 더 쏘고 간다는 말이 있다.

어두운 사상에 젖어 파괴적인 말을 쓰고 파괴적인 생각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협력자도 떠나가고 평화나 희망.꿈과 같은 말들도 멀어지고 얼굴 부을 일만 생기는 법이다.

밝고 힘차게 뻗어나가는 번영의 힘 또한 거칠게 호통치는 말이나 어둡고 화난 마음속에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태평양전쟁때 모든 국민이 벌레 씹은듯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으면 일본국민이 아니라며 비판 받던 가라앉은 나라 분위기가 바로 일본 패전의 주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지금 우리 한국의 4천만 국민들도 정치 경제 어느 모퉁이에도 도무지 웃을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서로의 모자람을 용서하고 웃는 얼굴로 이 우울한 시대를 뛰어 넘어야 한다. 정치가, 경제가, 권력주도세력이 우리를 화나게 해도 복이 오면 웃어주겠다는 냉소적 태도를 버리고 다같이 먼저 웃자.

대통령부터도 얼굴 펴고 웃자. 언론이 좀 맘에 안들어도 원래 야당과 언론은 비판 좋아하는 족속들이라고 여유있게 웃어 넘겨 가며 개혁하자. 뭣이든 부수고 때려눕히고 이기고야 말겠다는 오기를 풀면 얼굴은 저절로 펴진다.

4천만이 부은 얼굴로 서로 씨끈대 봤자 쏘는 벌떼(주변강국)만 더 달려드는 세상임을 모르지 않는다면 국운(國運)을 위해서라도 좀 웃어가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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