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저들이 우리를 압박해도 마음속의 그분 사진만큼은 뺏어갈 수 없지요".
지난 2000년 8월. '세계의 지붕' 티베트의 히말라야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산자락 마을에서 들었던 이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평균 해발 4천~5천m의 산악지역으로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이라는 티베트에서도 외로운 산골마을 '쩌쉬퉁'에서 대구 초모랑마 원정대팀과 민가에 잠시 머물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이야기다.
지난 1950년 무력으로 점령, 독립을 앗아간 중국정부는 티베트의 자유를 억압하고 히말라야 그 먼 곳에까지 촘촘하게 공안(경찰)요원을 파견해 독립을 위한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도 다람살라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나 사진조차 마음대로 가질 수 없도록 단속하고 있다.
당연히 국기는 상상조차 못하는 터라 드넓은 티베트 고원에는 붉은 중국국기만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뿐.
그러나 정부의 단속이 강하면 강할수록, 탄압이 잦으면 잦아질수록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심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히말라야 만년설처럼 변하지 않아 공안의 눈길을 피해 몰래 집집마다 몇장씩의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티베트를 떠올려 본 것은 제85주년 3.1절을 앞두고 요즘 대구시 공무원들이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맨손에 오로지 태극기 하나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경찰의 총칼 앞에 목숨을 빼앗긴 수많은 선조들의 함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3.1절. 그러나 3.1절의 의미가 단지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고 갈수록 잊혀져 가는판에 특히 올해는 28일이 토요 휴무제가 되면서 3.1절까지 3일간 '황금연휴'가 되기에 관심이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
정부는 올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3.1절인 만큼 3.1독립정신에서 보여준 민족의 역동성을 '참여와 개혁'의 국정이념에 접목시키기 위해 '전가정.전직장 태극기 달기 운동'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어서 공무원들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는 상황.
지하철 참사 등으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것이 많은 2월이지만 하나 밖에 없는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지킨 나라와 태극기인만큼 3.1절엔 우리 모두 스스로 태극기를 달아보는 성숙한 국민이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티베트처럼 자국 국기조차 하늘 아래 자유롭게 내걸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마침 올들어 개봉된 국내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현재 관객 500만명을 돌파, 전국민 10명 가운데 1명정도 지켜봤다는 흥행 진기록 행진을 계속, 성가를 올리고 있다.
올 3.1절에는 대구하늘, 아니 전국의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렸으면 싶다.
정인일 사회1부 차장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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