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어느 겨울날. 자동차 부품회사 엔지니어인 박만수(49.가명) 씨는 팔공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그만 실수로 안경을 바위에 떨어뜨려 부수고 말았다.
시력이 무척 나쁜 박씨로서는 순식간에 시각장애인이 된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승용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 간신히 내려왔다.
하지만 박씨는 "이제 고생은 끝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초고속인터넷망과 3D(차원) 프린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박씨는 우선 차량용 컴퓨터를 켜고 안경대리점에 접속해 자신에 맞는 디자인의 안경테를 고른 뒤, 양쪽 눈의 시력 등 몇가지 정보를 입력했다.
대금 결제를 마치고, 프린터 버턴을 누르자마자 승용차에 비치된 '3D 프린터'에서 안경이 인쇄(?)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초고속인터넷으로 배달된 새 안경을 쓰고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왔다.
3D프린터가 생활필수품이 된 미래사회는 안경을 비롯한 제품을 만드는 공장도, 물류망도 필요없다.
인터넷에서 '3차원 제품 지도'를 내려받아 3D프린터로 인쇄해 바로 쓸 수 있다.
◇3D 인쇄 어떻게 가능한가=3차원 인쇄는 먼저 제품 디자이너가 컴퓨터설계(CAD) 프로그램이나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해 제품의 디지털 정보를 입력한 '3차원 제품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3차원 제품지도는 응용 프로그램의 분할 알고리즘에 따라 여러 층의 평면지도로 나누어진 뒤 각 층의 지도정보를 3D프린터로 보내게 된다.
1984년 3차원 인쇄기술을 처음 발명한 3D시스템즈(미국 캘리포니아) 찰스 홀 사장은 자외선을 쪼이면 딱딱하게 굳는 특수 액체 폴리머를 사용했다.
통에 담긴 액체 폴리머 표면을 레이저 광으로 스캔해 제품 성형을 위한 기층을 만들고, 이 층을 액체 폴리머 속으로 적당히 가라앉힌 다음 또다시 레이저 광을 쏘아 다음 층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품을 완성한다.
분말을 단단한 고체로 만드는 3D인쇄 방식도 있다.
금속, 세라믹, 나이론 등의 분말로 얇은 층을 만든 뒤, 제품 지도에 따라 레이저 광을 쪼이면 그 위치의 분말이 녹아 고체가 되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3D인쇄를 마치고, 녹지 않은 분말을 불어내면 완성품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보다 더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방식은 잉크젯 프린터. 현재 많이 쓰고 있는 2차원 잉크젯 프린터는 잉크를 뿌려 인쇄하는데 반해, 3차원 잉크젯 프린터는 뜨거운 액체 플라스틱 방울을 뿜어, 이 액체 플라스틱이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어져 한층 한층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간다.
◇현실화된 3D 프린터=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리는 3D 프린터는 사실 일부 엔지니어들에게 이미 일상생활의 파트너로 등장했다.
어떤 엔지니어는 자신이 설계한 엔진부품이 예상대로 잘 맞는지 3D 프린터를 활용해 곧바로 확인하고 있고, 미 육군은 트럭에 설치된 3D 프린터로 차량 부품을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전투중에 차량이 고장났을 때도 귀찮고 번거러운 부품공급없이 현장에서 바로 인쇄해 쓸 수 있다면 전투력은 크게 높아지게 된다.
NASA(미항공우주국)은 아예 우주공간에서의 3D 인쇄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우주공간에서도 3D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주비행선에서 필요한 부품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어 지구에서 우주로 각종 부품을 공급하는데 따른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미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만들어지고, 전기를 가하면 압축되거나 구부러지는 특수 폴리머를 사용해 로봇용 인조근육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3D 프린터는 의료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의대의 블라디미르 미로노프 박사는 올해 초 생체물질을 3D 프린터로 뿜어내 혈관과 같은 3차원 튜브조직을 합성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미로노프 박사는 3차원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융합하는 '생체물질'과 함께 20℃ 이하에서는 액체이고 32℃ 이상에서는 고체가 되는 성질이 있는 '특수 겔'을 층층이 교대로 인쇄했다.
생체물질을 고온에서 고체 겔의 틀 안에서 융합한 후 다시 온도를 낮추면 겔이 액체로 변해 빠져나가고 3차원 생체조직만 남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동맥, 정맥, 모세혈관뿐만 아니라 콩팥을 비롯한 큰 생체조직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향후 과제=지금까지 건축, 자동차, 항공우주, 의료,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제품 제작 등에 활용되고 있는 3D 인쇄기술은 한 가지 재료만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있다.
우리가 휴대전화와 같은 복잡한 전자제품을 3D 프린터로 인쇄하려면, '3차원 다중재료 인쇄기술'을 완성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제품 디자인을 부피 픽셀인 수많은 복셀(voxel)로 나눈 후 디자인의 각 위치에 3D 프린터가 어떤 재료를 뿌릴 지를 정확하게 지정하면 된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실현은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3차원 모형의 각 복셀이 선택해야 할 색깔과 재료에 대한 정보량은 상상을 초월하 만큼 엄청나다.
이 엄청난 정보의 파일을 만든다고 해도 고체 안에 여러가지 재료를 정확하게 놓는데 필요한 또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 문제가 남아있다.
숙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인쇄 공정은 가열과 냉각을 포함하게 되는데, 각각의 재료들은 열팽창률이 서로 달라 냉각과정에서 금이 가거나 쪼개질 수 있다.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진정한 3D 프린터의 세상은 상상밖의 물성을 지닌 새로운 신물질을 창조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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