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밤 호롱불이 '벗'

입력 2004-02-17 13:57:36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 속칭 산성마을에 살고 있는 김무곤(67).윤성귀(58)씨 부부는 밤마다 호롱불을 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다.

김씨 부부에게 겨울밤은 유난히 길다.

지금도 이런 곳이 있을까 할 정도로 영락없는 산촌 생활 광경. 당연히 전화도 없다.

김씨 부부는 이곳에서 올해로 34년째 살고 있다.

처음 경주 안강에서 결혼해 살다가 먹고 살기 어려워 남편 고향인 달산으로 들어온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씨 부부는 이곳에서 1남4녀를 낳았으며, 두 딸은 출가시켰다.

외아들 태우(21)는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김씨 부부 집에 가려면 영덕읍에서 승용차로 30여분을 달린 뒤 걸어서 산길로 20여분을 가야 한다.

초가지붕 아래 겨우 버티고 있는 집은 10평 남짓. 안방과 사랑방, 부엌과 마굿간으로 짜여진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산골 바람이 세기 때문에 밤낮으로 문고리를 잠가놓고 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1.5평 안방은 온통 새까맣다.

"저 양반이 긴긴 밤 하도 담배를 피워대서 그렇다"며 부인이 귀띔한다

안방에는 달력 하나 걸린 게 없다.

꽃피면 봄이고, 그러면 씨를 뿌린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사와 담을 쌓은 것도 아니다.

남편은 한달에 두번 정도, 부인은 석달에 한번쯤 영덕에 나간다.

방문객이라고는 가끔 찾아오는 사진작가와 딸들이 보낸 소포꾸러미를 안고 올라오는 우체부가 유일하다.

"비 안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울고, 아들 걱정된다고 울고…, 저 양반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요". 수십년간의 농사와 궂은 일로 손등이 갈라 터질대로 터진 부인 윤씨는 남편이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리다고 했다.

김씨 부부의 주 수입원은 산나물 채취. 집을 나서기만 하면 다래와 고사리, 두릅, 싸리버섯 등 청정지역 팔각산 산자락에 서식하는 산나물이 적잖다.

부부는 지금 눈을 감고 있어도 어디에 무슨 나물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훤히 안다.

농사는 기술이 부족해 지을 때마다 손해를 봤다.

작년에도 비료대와 비닐 값 등 농사비용으로 100여만원을 지출했지만 수입은 고추 40여근 수확에 그쳤다.

투자비의 절반도 안된다.

그래도 올해 또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그들의 삶에 농사가 없이는 이야기가 안되기 때문이란다.

긴긴 겨울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없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다 습관들이기 나름이다"라고 했다.

김씨 부부는 달산면 산성마을에서 100여년 전 모습과 똑같이 살고 있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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