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씻기질 않아" 중앙로역 청소원 '회한의 1년'

입력 2004-02-17 11:33:42

"계단과 승강장을 닦을 때마다 가슴이 떨려옵니다".

16일 오후 5시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사. 한복순(63.여.대구 동구 지저동)씨가 "한송이 한송이마다 애달픈 사연이 있지 않겠느냐"며 승강장 입구에 있는 국화꽃들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이 국화꽃은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 가족과 친지들이 갖다 놓은 것.

그녀는 지하철 역사 청소를 같이 하면서 '싸온 도시락을 대기실에서 나누어 먹으며 세상사는 이야기, 아들딸 이야기를 나누던 살갑던 동료 3명'을 1년전 바로 이 자리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한씨의 동료 4명중 김순자(51.여)씨와 김정숙(58.여)씨, 정영선(59.여)씨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남영이(51.여.북구 산격동)씨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것.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일어난 참사인데다 항상 같이 일하던 이들이어서 참사 1년을 맞는 한씨의 아픔은 더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또다른 동료 조상금(65.여)씨는 "오후반에 소속돼 다행이 목숨을 건졌지만 고생만 하다 하늘로 간 동료 생각으로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숨진 김씨 등 3명은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지하철 종사자란 이유로 세간의 관심을 끌지못했고, 한때는 유가족들이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동료 직원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었다.

조씨와 한씨는 특히 김순자씨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이들은 "6급 장애인이었던 순자씨가 큰 아들, 역시 6급 장애인인 작은 아들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내색않고 쓰레기통 씻기, 승강장 바닥 껌떼기 등 힘든 일은 도맡았다"며 울먹였다.

한씨에게 '언니야! 나는 조금만 더 고생하면 편할 날이 올 거야'라고 자주 얘기했다던 정영선씨도 잊을 수 없는 동료.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큰 아들과 김포공항에서 근무하는 작은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평생 살아온 정씨가 끝내 "하루라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채 하늘로 갔다"며 안타까워 했다.

지하철 재개통에 맞추어 올해 1월1일부터 다시 중앙로 역사로 돌아온 한씨와 조씨. 이들은 참사의 아픔을 씻어내려는 듯 동료가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쓰러졌던 자리를 어느 때보다 열심히 비질을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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