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단 규슈의 나가사키(長崎)는 서양이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1571년 네덜란드 상인들은 나가사키를 찾아 무역요구와 함께 당시 최신 무기인 화승총(조총) 두 자루를 일본에 건네 주었다.
일본은 화약 심지점화로 발사하는 화승총을 대량제작, 임진왜란(1592~1587)때 조선을 침공하는 주무기로 삼았다.
사거리가 200m나 되는 이 총은 조선에도 한 자루가 건네져 선조앞에서 시험발사 됐으나 유림의 반대로 폐기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야 선조는 화승총을 제작토록 훈련도감에 명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었다.
일본은 네덜란드를 '오란다'라고 부르는데 나가사키에는 오란다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꽁꽁 닫아 걸었던 1800년대에도 나가사키는 유일한 무역항으로 동서양 교류의 장이었다
서양문물이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보니 천주교 등 외래 종교도 이곳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나가사키에 천주교도 추방령을 내렸다.
많은 신자들이 체포돼 온갖 고문과 화형을 받았으나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다.
이때 순교한 스페인신부 6명과 일본인 신자 20명에 대해 1862년 로마교황청은 성인으로 추대했고, 1864년에는 일본 최초의 고딕성당인 오우라텐슈도가 건립됐다.
26인 순교성당이기도 한 이 성당은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1962년에는 나가사키 철도역에서 보이는 언덕에 26성인기념관〈사진〉과 함께 니시자카 성당도 건립돼 이 지역은 일본 천주교의 성지로 불린다.
또 나가사키 시내 곳곳에는 세계 2차대전의 상흔이 가득하다.
1945년 8월9일 미국의 원폭투하로 잿더미로 변한 이 도시에는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원폭돔과 한국인을 비롯한 7만4천여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추모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외국 선원과 일본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인 나가사키는 이같은 역사와 어울려 슬픔과 이별의 도시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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