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참사의 아픔-(상)대구지하철 화재 1주기

입력 2004-02-10 11:48:50

18일로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된다.

전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던 참사는 시간에 묻혀 '과거의 사건'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나 딸, 부인, 남편을 잃고 중앙로 역사를 헤매며 울부짖던 유가족과 부상자들에게는 '2.18'이란 숫자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참사 1년을 맞아 이들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대구지하철을 점검해본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은 박두봉(36.동구 신암동)씨. 참사가 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박씨는 아직도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려 해도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리는 데다 홀로 남은 딸 희지(11)를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밤마다 술로 잠을 청하고 있는 것.

박씨의 부인 정기숙(36)씨와 아들 제균(당시 8세)이가 숨진 지난해 2월18일은 제균이의 유치원 졸업식 날이었다.

"1년이 지났지만 그 날이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는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사고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했다.

다니던 회사마저 참사 직후에 그만 둔 박씨는 "제균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시장도 편하게 볼 수 있다며 아내가 소형차 한대를 원했다"면서 "그때 그말만 들어주었더라면..."이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됐지만 희생자 192명의 유가족과 부상자 148명에게 '1년'은 단지 숫자상의 의미일 뿐이다.

참사 당시의 매캐한 연기와 아비규환의 현장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탓이다.

특히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다 보상 문제 등으로 생긴 일부의 차가운 시선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머니를 잃은 강모(43)씨는 "제대로 효도도 못 했다는 후회와 사고 당일 지하철을 왜 타게 만들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지금도 어머니 영정을 볼 면목이 없다"며 "주위에서 보상금을 많이 타 평생 먹고 살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때는 사람 만나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라고 했다.

게다가 유족들 상당수가 사고 후 생업을 포기하거나 직장에 사표를 낸 상태여서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부상자들 역시 참사의 아픔을 몸에서 아직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부상자 박모(60)씨의 경우 사고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아직까지 달성군 논공읍의 한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대인 공포를 비롯 각종 정신질환 증세까지 겹쳐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는 것.

사고 당시 뜨거운 연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 기도에 화상을 입은 곽모(40)씨는 이미 2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아직 몇차례 더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곽씨는 수술보다는 어린 자녀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부상자들은 참사 현장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이처럼 긴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상자대책위에 따르면 공식 집계된 148명의 부상자 중 순환기 계통 질환자가 전체의 80%에 이르며, 이중 상당수가 만성 후유증으로 분류될 만큼 참사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충격에 따른 정신장애도 심각한 수준이다.

부상자 60명에 대해 심리치료 검사를 했던 서울내러티브 연구소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검사에서는 부상자들의 정신적 공황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우울증 등의 후유 장애를 앓고 있으며 자살을 기도하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경우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 것.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최웅용 대구대 정신건강상담센터 소장은 "9년 전의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유족들도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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