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6)-속리산 종주(9)

입력 2004-02-02 16:21:35

9.

주역에 " 속세를 피해 숨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뜻을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된 지 이미 오래다"라고 적혀있죠. 지금은 속세에 살고 산속에 별장 얻고, 일거양득 (一擧 兩得) 시대죠. 뭐야.

속리산 (俗離山)이란 지명유래부터 알아봅시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에는 "784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진표(眞表)가 이 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 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비승비속 (非僧非俗).

게다가, " 이 산은 신령하고 웅장하고 정기가 있어 인간의 세속으로는 따를 수도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세속을 떠난 산, 즉 속리산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속계의 이편과 선계의 이편이 마주 대하는 곳이 속리산이라고 보면. 속계와 선계가 어느 사이에 이렇게 격리되게 되었나, 선계가 이 속계를 멀리했다면 이속(離 俗)이라 했을텐데 속리(俗離)라고 이름을 칭한 것을 보면 속세가 선계을 멀리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속리산은 어디에 해당되나. 또 수준 높이네, 이헌태 수준 좀 낮추어라.

사람이 산 속에 들어가면 선(仙)이요 골짜기에 내려와 정착하면 속(俗) 된다고 하네요. 어느 분이 그러셨다고 해요. "같은 산을 보더라도 산꼭대기에서 멀리 바라보면 신선이요 산골짜기에서 보면 세속이 된다. 더 멀리 미래를 보는 것은 선인이요 눈앞에 보는 것은 속인이다" 참 좋은 말씀 같네요.

보너스. " 눈앞에 닥쳐오는 모든 일은 족한 줄 알면 선경 (仙境) 이나 족한 줄 모르면 속경 (俗境)이요.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인연은 잘 쓰면 살리는 작용을 하지만 잘못 쓰면 죽이는 작용을 하느리라" 이헌태 어디서 그런 좋은 말을 골랐냐. 잡동사니 이헌태, 한국의 국보급 아니 보물급 아니 골동품급 아니 동네잡동사니급. 딩동댕.

또 딴 소리도 있더라구요. 홍자성의 '채근담'에는 " 세상이 괴롭힌다고 사람을 피하려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생활이란 본래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먼지가 많은 거리에 있으면서 그 먼지에 물들지 않는 것이 진정 깨달은 사람이다". 이헌태 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속세를 떠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성현들도 다 생각이 다르네. 알아서 살아야지 뭐.

'채근담'은 산속으로 숨어 사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더라구요."산림에 숨어 사는 것이 즐겁다 하지 말라. 그 말은 아직도 산림의 참 맛을 못 깨달았다는 증거다. 세상 명리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고 하지 말라. 그 마음이 아직도 명리의 미련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까닭이다"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멈췄다 하였다. 자욱한 눈안개가 펼쳐졌다 사라졌다 하였다. 속리산 정상 부근이 보였다 말았다 하였다. 나의 마음이 깨끗해졌다 흐려졌다 하였다. '오락가락' 이구만.

오전 11시 50분, 문장대 바로 턱밑에 놓여있는 크다란 너럭바위에 올라섰다. 눈발이 더 세차게 날리고 서기 어린 상고대가 모두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일행은 기념 사진을 후딱 찍고 바로 위 문장대 정상은 가지 않고 바로 통과, 정상휴게소에 갔다. 문장대에 올라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

정상휴게소 밖과 안은 등산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휴게소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가운데 놓인 화롯가에 모여 얼었던 몸과 손을 녹였다. 일행은 맛나는 촌 김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몇 잔씩 걸쳤다. 백신종 선배가 가져온 곶감도 맛나게 먹었다. 촌 사람이라서 그런지 먹을 것을 얼마나 많이 싸들고 왔는지. 시골 할배같이. 아, 이 행복. 아들도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헤치웠다. 앞으로 갈 길이 예사롭지 않아 든든히 먹였다.

주인 아저씨가 그 유명한 속리산 물 한 통을 공짜로 주었다. 속리산 물은 '산파수'라고 하지 않나. 속리산은 낙동강, 한강 그리고 금강 삼파의 분수령이다. 산은 석산이요 계곡 또한 석천이라 물은 거울처럼 맑고 그 소리는 금곡처럼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나.

휴게소 처마 밑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서 하나를 따서 아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다 추억이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잘한다. 제가 그랬죠. '인생은 추억쌓기'라고. 놀만 뭐합니까 자꾸 건수 만들어야지.

정상휴게소에서는 이정표를 보니 천왕봉(1058미터) 남쪽 3.4킬로미터, 왼쪽 화북 (상주시 화북면) 3.3킬로미터, 오른쪽 법주사 (보은군 내속리면) 5.8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문장대는 바로 위 100미터.

정상 휴게소에서 사방을 휙 돌아보니 속리산 산속은 눈이 나무까지도 항복을 받아 '눈 천지'였다. 흙이 사라졌고 흙 길도 사라졌다. 흰 페인트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눈은 커다란 바위를 빼고 온통 '눈 세상' 으로 만들어 버렸다. '눈 투성이' 이였다. '눈천지 삐까리'였다. 속리산은 '장나라'가 아니라 '눈나라'였던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고". 아이러니컬 하게도 넓은 세계에 뛰어 다니시지 못하고 어느 세계 하늘 아래 웅크리고 계신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님의 말씀. 나의 좌우명, "세계는 넓고 구경할 곳은 많고". 무슨 생각, 당장 갈 길이 멀어 다시 힘을 내자며 마음 속을 다짐한 뒤 낮 12시 10분 힘차게 발을 다시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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