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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6일은 소한(小寒), 21일은 대한(大寒), 2월 4일은 입춘(入春). 대한에 가까운 1월 18일,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팀의 새해 첫 대간산행이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북행 (北 行) 백두대간 종주, 남녘 출발지인 지리산 천왕봉을 떠난 이후 이십번째 산행이다. 사람 나이 이십이면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는데. 산행팀이나 이헌태 개인이나 나름대로 산(山) 철학은 물론 대간산행의 노하우나 감(感)도 잡았다고 봐야죠. 앞으로 더 숙련되게 더 겸손하게 산행을 해야지. 잘 생각했다.
1월은 한해 새출발의 달. 마음을 새롭게 다져본다. 송구영신 (送舊迎新) .천지에 가득한 새 기운이 이 몸에도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헌태 엎드림. 저도 열심히 살겠으니 여러분도 행운과 만복이 한껏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1월을 어떻게 부르는 지 아세요. 어쩌면 우리나라 기후와 사정에 똑 맞는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수우 족),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오마하 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쥬니 족),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테와 푸에블록 족),"비람 부는 달"(체로키 족).
자정인 저녁 12시에 전철 제기역 앞 세계최초의 한방빌딩인 '한솔동의보감' 앞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명산 속리산 깊숙히 파묻혀 있는 만수계곡 마을로 향했다. 지난 산행때 마쳤던 피앗재골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우째 이런 일이. 속리산 귀신에 홀린 탓인지, 공교롭게도 보은군 내속리면 만수리 만수동마을을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가 결국은 당초 이번 산행의 예정종착지인 늘재에 당도해서 그 곳에서 산행을 출발하는 '역산행'을 택했다. '역산행'은 처음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가 아니고 '처음은 모두 추억이어라'. 나중에 설명 드리겠지만 이번 '역산행'은 하늘이 내리신 축복이었더라구요.
근래에는 구정때 촌노인들이 보따리 싸매고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 이 꽤 늘어났잖아요. 저희 어머니도 대구에서 서울로 오시죠.
나온 김에. '역'으로 시작되는 가장 엄숙한 말은 '역사' (歷史) 입니다. 권력자들이여, 역사 앞에 겸손합시다. 그러면 잘 할 것입니다. '역'으로 시작되는 최고인물은 '역도산' 이고 또 '역'으로 시작되는 최고운명은 '역마살'이라고. '역마살'은 이헌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여행가와 산악인들을 '현대판 역마살'로 임명합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예전에는 '걸뱅이'였지만 지금은 너무 너무 부러운 '여행가' 이죠. 지금이나 미래에도 최고의 직업이죠. '역'으로 시작되는 가장 힘 빠지는 말은 '역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전세버스는 오전 5시 40분쯤 늘재에 도착했다. 거창도사 백신종선배와 무심산악회 윤성진 회장님이 합류해서 대원은 총 14명이 되었다. 이번 산행은 출발시간이 매우 늦었고 예정 산행시간도 꽤 오래 잡혀있어 '고생 산행'이 명약관화.
이번 산행에는 드디어 종마인 이헌태, 거창하게 얘기할 것 없이 저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를 너무 너무 잘 만나 (본인은 아부지 잘 못 만나 산에 끌려 다니며 고생했다고 일방적으로, 아직 철없이 주장함) 초등학교 5학년때 이미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청왕봉을 위시 한국의 아름다운 명산의 정상을 다 밟았던 자칭, '백두산 다람쥐'다. 5학년이 지나면서 친구 만나는데 시간이 뺏기고 컴퓨터를 더 가까이 하면서 바쁜 척, 쭉 등산을 등한시했는데 이번에 방학이고 몸도 풀 겸 한번 따라 나서겠단다.
아부지인 나보다 산을 훨씬 더 잘 타서 아부지의 이미지를 늘 구기게 했지만 그래도 혹시 그 동안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걱정은 되었다. 나중에 이는 기우에 그쳤고 아부지인 내가 그 이전과 똑같이 다시 한번 아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았습니다. 아, 쪽팔려.
늘재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흰 눈이 속리산 자락을 은백색으로 수놓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별 한 점 보이지 않고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었다. 정적과 정막과 고요만이 한겨울 밤의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선선한 '청정냉풍'(淸淨冷風)의 기운이 감돌았다. 겨울등산에는 그만인 상쾌한 날씨였다.
청정냉풍. "새와 흐르는 물처럼/ 허공을 오가는 구름처럼 막힘도 걸림도 없고/ 청산같이 말없고 명월처럼 밝게/ 청풍처럼 시원하게"
공자, 맹자도 필요 없고 책과 지식도 다 필요 없어. 오직 새와 물, 구름과 청산, 명월과 청풍이 나의 스승입니다. 자연이 바로 이헌태의 스승이며 삶의 철학입니다. 아 그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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