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겨울풍경-(6)박용래 '저녁눈'

입력 2004-02-02 08:59:03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의 '저녁눈' 전문

4행의 짧은 시행 속에 물새 발자국 같은 한 시대의 사위어져 가는 풍경을 소롯이 떠올려 주고 있다.

현실의 풍경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장소만 스냅하여 그것을 그대로 편집해서 보이고 있다.

말집 호롱불 밑이나 변두리 빈터를 살필 줄 아는 시인의 시점과 그런 것을 편집해 모을 줄 아는 안목이 작용하여 낯익은 풍경을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저녁눈을 신선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박함…애틋한 그리움

변두리 빈터에는 말집 호롱불이 있고, 조랑말 발굽 소리가 있고,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기도 하고,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기도 한다.

한점 바람같이 가버린 한 시대의 풍경을 본다.

붐비는 눈발 속에서 애틋한 그리움과 격정 같은 것이 뒤섞여 있는 것을 또한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덧없이 사라지는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리드미컬한 효과보다는 떠돌이 삶의 고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역경과 고뇌를 거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역작이다.

박용래 시인은 1968년 '저녁눈'으로 제1회 현대시학상을 받았다.

"나는 유년시절을 금강 하류에서 자랐다.

저물녘 강둑을 거닐면서 맡아보았던 민들레꽃 냄새를 아직 잊을 수 없다….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좋고, 흐린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좋고, 비 오는 날보다는 눈 오는 날이 좋다"고 쓴 수상소감을 기억하고 있다.

'저녁눈'을 읽고 그때 나는 이런 글을 썼다.

그리운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격정이다.

미운 사람을 목 견디게 하는 것도 일종의 격정이랄 수밖에, 나에게 있는 것은 어떤 격정일까. 제야(除夜)를 그 여자와 정말 보낼 수 있었다면 그건 내 생애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을까. 겨울 쓸쓸한 과수원에 푸설푸설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제야까지 대구의 그많은 거리들은 어째서 그렇게 흥청거려야 했는지. 혹톨, 가보세, 옥이집 등에 이르는 골목은 인파로 붐비었고, 징글벨이 울리고, 불망의 가락이 깔리고 그래서 네온은 더욱 부풀었고, 사람들은 허연 입김을 훅훅 뿜어내면서 밀려가고 또 밀려오곤 했다.

영화를 하나씩 보아야만 했고, 친구나 애인이나 그도 없으면 아무라도 만나야만 했고, 그러다가 비좁은 홀에라도 기어들어 술을 한잔씩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며칠간만 대구를 떠나 눈이 푸설푸설 내리는 시골 과수원을 바라보면서 눈처럼 안경이 차갑게 빛나던 곱고 작은 그 여자의 순결을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일깨움

1960년대 춥고 헐벗은 몸으로 겨울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빛나는 문체를 익힌다고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카뮈의 '표리(表裏)'를 수없이 읽었고, 서정주의 '풀리는 한강 가에서', 박용래의 '저녁눈'을 외고 다녔다.

'저녁눈'에는 그리움의 격정이 있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저녁눈'과 비슷한 시를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에 달빛은 쌓이리

발목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겨울밤'의 전문

박용래 시인의 시는 모두 절제된 감상적(感傷的) 정서다.

고향에 깃든 정한을 한폭의 풍경화로 그리고 있다.

화려한 도시보다는 밀려나 있는 변두리, 우리에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일깨움을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사물 속에 들어가 사물 그 자체가 되고자하는 소멸의 의지는 자신의 그리움, 애달픔, 쓸쓸함을 소멸의 공간으로 바꾸어 비어 있는 상태의 아름다움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박용래 시의 아름다움과 외로움인 것이다.

도광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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