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섬유.패션시장을 가다-명품은 유럽.저가는 중 "일본은 없다"

입력 2004-01-28 09:13:22

일본 섬유.패션 시장은 명확한 정의가 불가능하다.

'싸구려'와 '최고급 제품'이 한 시장에 공존하고 있고 현지 유명백화점과 원단시장은 13년째 계속되는 내수 부진으로 끝없이 몰락하고 있는 반면 샤넬, 구찌, 루이뷔통 등 유럽 명품 매장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일본 틈새 시장 공략을 노리는 지역 직물업체들에게 이같은 현지 시장 분석은 빼놓을 수 없는 선행 과제. 일본 최대 쇼핑 명소인 하라주쿠(原宿) 오모테 산도, 다케시타도리 거리와 미즈코시, 마츠자카야 등 긴자(銀座) 유명백화점은 물론 유자와야, 닛포리 등 도쿄 인근 원단시장을 방문해 현지 섬유.패션 시장의 현주소를 들여다 봤다.

◇하라주쿠-극과 극의 공존

신주쿠(新宿)에서 차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일본 패션일번지 하라주쿠엔 극과 극의 패션시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로수가 울창한 오모테산도 거리와 개성있는 젊음의 거리 다케시타도리는 유럽 명품과 일본 특유의 '닛폰필'이 공존하는 곳.

오모테산도엔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50여 명품매장이 거리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이곳엔 샤넬, 루이뷔통, 구찌, 페라가모, 아르마니, 크리스찬디오르 등 대표적 명품들이 7, 8층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고 시슬리, 모간, 마리나 리나들, 펜디, 로에, 셀링, 도나카란, 브루노마글리, 시마, 미소니, 조콘데 등 열거하기도 힘든 각종 신흥명품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영국 명품 버버리 매장이 6층 규모의 신축 공사에 들어가는 등 거리 곳곳엔 또 다른 명품 매장이 입점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

기자를 안내한 이영희 FCK 소재기획팀장은 "낡은 건물들이 불과 2, 3년만에 최신식 명품으로 바뀌었다"며 "전세계에 걸쳐 유럽 명품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고 했다.

8층 높이의 루이뷔통 경우 파리 본사보다 더 커 전세계 판매량의 3분의2가 이곳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오모테산도에서 5분 거리에 불과한 다케시타도리는 젊은 개성이 톡톡 튀는 전혀 다른 분위기. 폭 3m, 길이 1km에 걸쳐 쇼핑가가 늘어서 있고 힙합, 재즈는 물론 만화주인공풍의 코스프레 패션까지 10, 20대를 겨냥한 의류, 신발, 액세서리가 넘쳐 난다.

오모테산도 명품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반면 이 일대 의류는 비싸도 1만~3만원을 넘지 않는다.

싸고 다양한 각종 패션 잡화는 일본 특유의 패션 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짧은 미니스커트와 원색 스타킹으로 치장한 공주 스타일, 잔뜩 주름을 넣어 허벅지까지 올린 교복 스타일, 헐렁한 망사 티셔츠를 겹쳐 입은 레이어드 스타일 등 각양각색의 젊은 여성들의 수시로 이곳을 오간다.

일본 4차 대중문화 개방에 즈음해 서울 이대거리, 대구 동성로에 불기 시작한 일본 패션 따라하기 열풍은 '닛폰필'이라 불리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얼어붙은 내수시장

하라주쿠 섬유.패션 시장과 달리 긴자에 밀집한 유명백화점들과 도쿄 인근 원단시장들은 갈수록 활기를 잃고 있다.

긴자 마츠자카야 백화점은 넓은 매장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깔끔한 인테리어가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을 풍기지만 1층부터 8층까지 백화점 전체 매장은 쇼핑내내 썰렁했다.

제품 가격도 우리보다 더 싼 편. 최고급 남성복이 5만~6만엔(67만원) 수준이라 높은 물가로 유명한 일본에선 그리 비싸다고 할 수 없는 제품들이다.

일본 최대 백화점인 미즈코시 경우 이곳보단 사정이 나았지만 의류 패션 제품의 경우 한국과 비교해 값이나 품질면에서 별 차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최태용 FCK 이사장은 "이는 중국에 밀려 토종 봉제업체들이 급속히 몰락하면서 일본 하이패션이 완전 붕괴된 때문"이라며 "하나에 모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들도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동해 내수 브랜드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일본 패션은 고가는 유럽 명품에, 저가는 대량생산체제의 중국 제품에 시장을 뺐겼고, 지난 13년간 계속된 내수 부진이 겹쳐 서서히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원단시장도 활기가 없기는 매 한가지. 도쿄가 일본 섬유 중심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곳 원단시장은 서울의 동대문시장과는 완전 다르다.

도쿄에서는 그래도 유명하다는 가마타 유자와야, 닛포리 토마토 원단 상가 경우 도매가 완전히 끊겨 소매만 겨우 유통되고 있으며 중국 원단들이 대거 수입돼 제품의 질마저 한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